매일신문

[기고]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면적병산제로 하자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오지, 소백산자락인 내 고향에서도 "국회의원들이 밥그릇 싸움이나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들의 푸념은 결국 오지 골짜기에 버려진 것만도 서러운데, 겨우 지켜온 지역대표마저 뺏어간다는 요지일 것이다. 선거구 재획정을 앞둔 국회를 겨냥한 푸념인 듯하다.

국회의원은 지역구 246명과 비례대표 54명으로 구성된다. 물론 지역구는 도시와 농어촌의 인구수에 의해 배정되었다. 가장 공평한 배분으로 보이지만, 실은 가장 손쉬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현재 수도권 의석 수는 112석(45.5%)인데, 새 획정안에 의하면 의석이 134석(51.9%)으로 불어나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여기다 수도권 면적을 감안해보면 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1만2천116㎢(11.4%)밖에 안 되는 3개 시'도 수도권에 134석을 배정한 다음, 나머지 112석으로 9만3천990㎢(88.6%) 면적을 가진 14개 시'도가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위 지역구의 경우, 경북의 봉화'영양'울진'영덕은 총면적이 3천744㎢나 되는 거대 지역구이다. 이는 47명의 의원군단을 거느린 서울시(605㎢) 면적의 6배를 훌쩍 넘는 엄청난 면적이다. 이런 광활한 면적에서 1명이 선출되고, 6분의 1 면적의 서울시에서 47명이 선출된다면 1대 282라는 대단한 상대적 격차를 두는 꼴이 된다.

이런 격차를 헌법은 왜 묵인하고 있을까? 충북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을 1명의 국회의원이 책임지라는 자체가 대의정치에 합치되는 일이 아닐 것인데.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내륙의 봉화에서 해변가 울진까지는 물리적으로 100㎞ 이상이며, 역사 이전부터 험준한 산맥으로 막혀 있어 전혀 통혼권도 아닌데도 한 지역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생활권이 조금도 고려되지 않은 게리맨더링인 셈이다. 행여나 비례대표가 이런 격차를 줄여줄까 기대도 해봤지만, 비례대표 54명은 훨씬 지독한 중앙 중심이어서 도농 격차만 억세게 늘려놨을 뿐 지방에서는 여간 구경하기 어려운 보물이 아니었다.

이런 오류들은 결국 인구 만능주의에서 오는 국토 망각증으로 지적될 수 있다.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으로 구성된다. 이 3요소 중 국토는 인구를 담는 그릇에 해당한다. 그릇이 없으면 인구도 뭐도 담을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헌법 어디에도 인구만으로 지역을 대표해야 한다고 명시된 구절은 없다.

국토가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한 요소이기에 대표자 선출에는 인구와 국토가 함께 고려됨이 옳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우리 민족은 땅에 대한 집착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이다. 그런 국토가 뒷방 신세를 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터전이 국토이고, 조상들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담겨 있는 곳이 국토이다. 이런 바탕 없이 뭐든지 무조건 인구 수로 기준을 삼는 건 너무 산술적이고, 기계적이다.

이런 오류들이 반복되는 한 인구 과소지역은 자기 대표자를 국회로 보낼 수 없는 모순 속에 심한 박탈감과 함께 인구의 '이촌향도 현상'을 훨씬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텅 빈 농'어촌에는 아예 의석이 배정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면 인구가 급속히 몰리는 아파트단지에는 단지 대표가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인구율은 90%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의 비례대로라면 당연히 의원 수의 90% 이상이 도시의 몫으로 젖혀지고 나머지 10%가 안 되는 수를 가지고 83%의 면적을 가진 농'어촌이 골고루 나누어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비례대표 의석이 합해지면 그 격차는 점점 커지기만 해왔다.

도시에 인구가 있듯이 농촌에는 땅이 있다. 이들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인구'면적병산제'를 생각해 볼 시기가 아닌가 한다. 택시 요금의 '거리'시간병산제'처럼.

배용호/전 영주시교육장·현 소백산자락길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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