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계산법이 궁금하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뒤집어 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데 한 마디로 복잡한 계산을 정리해 버렸다.
박 대통령은 9일 '증세 없는 복지'에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우리가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더 잘해보자는 그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1년 뒤 총선을 치러야 하는 여당에서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낸 증세 논의를 선거의 부담도 없는 대통령이 입 밖에 내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쓰는 청와대 계산기는 도대체 어떤 답을 내놓은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5년간 135조원이 더 필요하다는데, 지난해 세수 결손이 1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데 말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민에게 부담을 더 드리기 전에 우리가 할 도리를 했느냐, 이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도 했다. 돈을 더 걷지도 않고, 씀씀이를 더 줄인다는 이야기도 없는데 무슨 수로 그 많은 돈을 다 만든다는 걸까? 대통령은 한집안인 새누리당보다 더 성능이 좋은 계산기를 사용한 걸까? 아니면 신공식을 대입한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박 대통령은 이날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금이 자연히 더 많이 걷히게 되는데, 이를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했느냐"며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 하면, 그것이 우리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고도 했다. 이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는 구구절절 옳다. 거두절미한다면 틀린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그게 야당 정치인의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호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의 말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누가 모르는가? 다 아는 정답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걱정도 안 하겠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이 정부는 그렇게 못 하지 않았는가? 힘이 펄펄 솟는다는 집권 초기 2년에도 못한 일을 힘이 빠져가는 남은 3년 동안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틀린 말이 아닌데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부담을 더 지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라면 환영받아야 하는데도 통쾌하지도 시원하지도 않다. 신발을 신은 채로 가려운 발을 긁은 느낌이랄까?
집권 2년을 넘긴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의심스럽다. 경기침체로 인한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는데 언제까지 온 나라가 경기 활성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할 건지 궁금하다. 대통령의 이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정부가 나서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건강보험 체계 개선 등 개혁작업들을 시간을 끌지 않고 차근차근 추진해 나갔어야 했다. 공직사회가 솔선수범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국민들을 설득해 함께 가자고 해야 했다. 정부가 나서고 국민들이 뒤를 따르면 버티기만 하는 기업들도 따라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렇게 나라가 하나가 돼야 불황도 극복하고 경기도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없었다. 정부가 그런 일을 척척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는 국회 탓, 야당 탓을 하면서 사실상 2년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니 쌍수를 들고 박수를 쳐야 할 대통령의 말에도 국민들은 무반응이다. 오히려 비판하는 이도 있다. 증세와 복지축소를 이야기하는 정치권을 욕하지도 않는다. 언론도 그런 자세다. 대통령이 직면한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안 한다고 약속했던 증세도 할 수 있고, 복지정책 추진의 궤도 수정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한사코 아니라고만 하고 안 한다고만 하니 대통령의 말이 곧이 들리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말처럼 되기는 할까? 아닐 것 같다. 벌써부터 무상복지냐 선별복지냐, 부자증세냐 아니냐를 놓고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이 벌일 지루한 싸움 장면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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