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킬 수 없는 공약 내세운 셈
증세'복지 수렁에 스스로 빠져들어
작년에 국세 수입이 11조원 결손을 기록했고 금년에도 10조원 규모의 결손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 같은 세수 결손 규모는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았던 1998년 당시의 8조6천억원보다 더 크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노령 연금과 영유아 무상보육,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된 무상급식 등의 복지를 축소하든가 증세를 하든가 택일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복지를 축소하자는 입장이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복지 축소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를 통해 재원을 충당하면 되기에 증세를 말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복지는 축소해서는 안 되며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치권 전체가 복지와 증세 논쟁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고 그해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데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이 주효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경제철학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정건전성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만큼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의원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박 대통령이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를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선별적 복지를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 정도로 이해했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회부하고 거기에서 패배하자 사임하고,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고 집단적 행동에 나서는 등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박 대통령은 일반적 복지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박 대통령은 노령연금 20만원과 영유아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추가로 필요한 재원은 지하경제 양성화로서 충당할 수 있다면서 증세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서 복지재원을 마련한다는 발상이 비현실적임은 이미 드러나고 말았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다던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고,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도 재정이 부족해서 계속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를 하지 않는다면 재정 적자 확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경제활성화를 통해 복지재원을 확충하겠다는 발상은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런 앞뒤 사정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이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내세웠다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선거공약이라고 하더라도 재정부담이 수반되는 공약은 이행을 연기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복지를 확충해서 오늘날의 이런 상황을 야기한 것이다. 경제민주화, 국민대통합, 검찰개혁 등 예산 소요가 없는 중요한 대선공약은 줄줄이 파기하고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복지공약은 재정 소요를 계산하지도 않은 채 추진하다가 이 지경을 만들었으니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말대로 한 번 주어진 복지를 거두어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증세를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증세도 결코 쉽지 않다. 정부는 증세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연말정산 방식 변경 등으로 증세를 체감하고 있는 직장인들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야권은 법인세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인세율을 인상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세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세율을 인하해도 경제가 좋으면 세수가 늘어나고 세율을 인상해도 경제가 하강국면이면 세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세금을 도입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주세(酒稅)를 대폭 올려서 자신의 정치적 몰락을 재촉했고, 조지 H. W. 부시는 사치세를 도입해서 재선에 실패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종부세를 도입하더니 몰락하고 말았다. 여권은 증세와 복지라는 수렁에 스스로 빠져들어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야권은 여권의 이런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이 요즘의 정치 국면이다.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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