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에는 가는 겨울이 아쉬워 마지막 겨울을 보내기 위한 곳을 찾았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겨울 끝자락치고는 그리 춥지 않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부터는 큰 추위도 없다. 설 지나고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3월이다. 날짜로 봐도, 날씨로 봐도 봄은 소리 소문 없이 겨울에 방 빼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래서 봄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해졌다. 자연히 시선은 남쪽으로 향했고, 그중 동백꽃이 슬슬 피기 시작한다는 전남 여수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아직 바닷바람이 차가운 듯 느껴졌지만, 이미 봄은 그 바람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채꽃과 쑥을 보니 이곳은 초봄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 2시간가량 배를 타고 거문도에 도착했다. 여수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섬 거문도는 구한 말 영국군이 불법으로 점령해 역사교과서에 등장한 곳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봄이 먼저 도착하는 곳이기도 하다.
거문도여객선터미널에 내려 거문도 등대로 갈 때 건너야 하는 다리인 삼호교 위에 서자 갑자기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바닷바람의 차가움이 예사롭지 않아 '너무 일찍 온 건가'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다리를 건너 등대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길가에 노랗게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길가에 핀 유채꽃을 구경하다 보니 이미 차가운 바닷바람은 잦아든 지 오래였다.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길이 잘 닦여 있어 험하지 않다. 고개 하나를 넘어가면 섬과 섬을 연결하는 바윗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목넘어'라고 한다. 큰 파도가 치면 이 길 위로 바닷물이 넘어온다고 해서 목넘어라고 한다. 바다가 잔잔해 바닷물이 넘어올 일은 없었지만 가까이서 남해안의 맑은 바닷물을 구경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목넘어를 지나면 동백나무 숲 사이로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동백나무를 자세히 살펴봤다. 동글동글한 동백꽃 꽃봉오리가 손대면 터질 듯한 모습으로 꽉 차 있었다. 성질 급한 꽃들은 벌써 낙화(落花)의 신세가 돼 "왜 이제 오셨소"라는 원망을 하는 듯했다. 3월이 되면 만개한 동백꽃으로 이 길이 참 걸을 만 할 것 같았다. 동백꽃들을 구경하며 30분 정도 걸으니 거문도 등대에 도착했다. 거문도 등대에서 바라보는 남해는 가히 장쾌한 맛이 있었다. 짙푸른 바다의 색깔은 겨울 바다의 쓸쓸함과는 다른, 뭔가 희망적인 일이 생길 것 같은 기운을 불어다 줬다.
거문도에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또 다른 증표는 바로 쑥이다. 아직 길거리에 쑥을 구경하기 어려운 대구경북지역과 달리 거문도는 이미 쑥이 지천이었다. 거문도의 쑥은 해풍을 맞고 자라 그 향이 독특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른 봄에 난 쑥을 벌써 캐고 있었다. 쑥의 크기가 꽤 큰데도 억세기보다는 부들부들했고, 향도 좋았다. 이곳에서 나는 쑥 대부분은 서울에 판매되고 있단다.
◆"슬슬 오실 때가 되었소"
봄이 완연함을 알리는 꽃이야 단연 벚꽃이겠지만, 겨울이 물러가고 있음을 알리는 꽃은 누가 뭐라 해도 동백꽃이다. 여수의 오동도는 유명한 동백꽃 군락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막 피기 시작하는 동백꽃을 보기 위해 오동도로 몰려들고 있었다. 방파제 입구에서 오동도까지 약 600m 구간을 오가며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동백 열차는 사람을 가득 싣고 오동도로 달려갔다.
오동도에 도착한 사람들은 막 피기 시작하는 동백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었다. 동백꽃에 카메라를 들이대 접사 사진을 찍는 사람들, 셀카봉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동백꽃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동백나무 숲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노천카페인 '동박새꿈정원'에서 동백꽃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동백꽃과 꽃 구경 온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카페 주인 신미주 씨는 "아직 만개한 것은 아니지만, 3월에 오면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좀 더 호젓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동백꽃을 보고 싶다면 거문도 등대 길과 함께 금오도 비렁길 3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벼랑의 전라도 사투리인 '비렁'에서 만들어진 금오도 비렁길은 말 그대로 벼랑 따라 조성된 트레킹 길이다. 특히 3코스인 직포~학동 구간은 동백꽃과 함께 다도해의 절경을 함께 구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특히 매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과 동백나무 길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너른 바위 위에서 보는 바다풍경은 이 길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수 밤바다를 보는 새로운 방법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는 버스커버스커의 리더 장범준이 여수의 한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이 노래 때문에 "여수 밤바다가 어떻기에 그런 노래가 나왔을까"하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해수욕장에서 밤바다를 보기에는 계절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곳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여수해상케이블카 해야정류장은 오동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어 오동도를 구경하고 나오면서 같이 찾으면 되는 곳이었다.
해야정류장에서는 2012여수엑스포 전시장이 바로 보인다. 엑스포의 명물이었던 빅 오(Big O)에도 조명이 밝혀지고, 다른 전시관의 경관 조명이 밝혀지면서 여수 야경의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듯 보인다. 이것만 보고 여수 야경을 다 봤다고 판단하기에는 뭔가 섭섭하다.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 보기로 했다. 케이블카는 오동도 입구에서 출발해 돌산공원까지 이어져 있는데, 거북선대교, 돌산대교와 어우러지는 여수 시가지의 모습을 보고나니 제대로 야경을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산대교의 경관 조명은 가히 여수 야경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으로 손색이 없다. 돌산공원은 시시각각 변하는 돌산대교의 경관 조명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꼭 들르는 곳이다. 여수에 놀러 온 젊은이들은 돌산공원에서 여수의 야경을 감상하면서 '여수 밤바다'를 조용히 부르기도 했다.
글 사진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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