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동료 여럿이 찾아와 야생화에 관심이 많다며 동호회를 결성하자고 했습니다. 야생화는 식견이 문외한 영역이라며 처음부터 사양했죠. 한사코 손사래 치는데 당시 멸종위기종과 희귀종군락지와 기이하게 생긴 나무 등을 종종 발견해 언론에 오른 사실을 들추면서 줄곧 버티는 바람에 그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 그러자 한 술 더 떠서 회장을 맡아 달라는 거지 뭡니까. 곧이어 동호회 이름으로 먼저 '○○산야초회'란 명칭을 제시하더군요. 언뜻 생각에 역제안하기를, '산에 가면'이 어떠냐고 되물었죠. 산에 가서 순수하게 식물을 탐방하자는 뜻이었죠. 이설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그게 회장을 수락한 셈입니다. 그 뒤 창립모임을 갖고 '산에 가면' 회칙도 만들었습니다.
그 뒤 총무께서 탐방 장소를 추천해 달라기에 고민했죠. 제 자신이 도심에서 발견한 '중국단풍나무 연리지'도 있었지만, 청도군 지촌리 '소나무 연리지'를 추천했습니다.
두 소나무 몸통에서 가지가 서로 맞붙어 결이 이어진 모습은 아직도 마음 설레죠. 소나무 70~80년생인 근원경 40㎝와 30㎝ 두 그루는 수고가 15m로, 60㎝ 간격을 두고 높이 3.5m와 2.5m 부위에서 각각 직경 10㎝ 가지가 감쪽같이 결합됐습니다. 어! 그런데 탐방날 크게 실망했습니다. 뜻밖에도 한쪽 가지가 쩍 벌어졌지 뭡니까. 태풍에 두 나무가 따로 휘청거리다가 가지가 이완됐어요.
그나마 다행히도 형상을 그대로 보여줘서 중국『후한서』 '채옹전'의 연리지와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에 비익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 년 동안 옷을 벗지 않았고, 병세가 악화되자 백 일 동안 잠자리에 들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나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는데 무덤 앞에 두 나무가 자라더니 가지의 결이 이어졌죠.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입니다.
장한가는 마지막 연에서 '7월 7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하늘에선 비익조 되길 원하고 땅에선 연리지 되길 원하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이 한은 끝없이 계속 되네'. 여기서 비익조는 상상의 새로 눈과 날개를 한쪽만 가져서 서로 맞붙어야 하늘을 나는 그런 새이죠.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겁니다. 그 후로 장소 선정은 총무에게 일임했죠.
어느 날 합천호수변 능선을 타면서 누군가 춘란을 캐서 환호하데요. '이건 아닌데….' 그 뒤에도 탐방을 떠났는데 중부내륙고속도 선산IC 근처 산에서 총무께서 작은 연장을 나눠주더군요.
아하! 애당초의 명칭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야초든 약초든….' 그 뒤로는 '산에 가면'에 얼굴 내밀지 않았죠. 그렇게는 산에 가지 않아서 자연입니다.
(시인·전 대구시 앞산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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