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은 두 개의 거대한 유령이 지배하고 있다. 이 두 유령은 각각 36년 전, 6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고(故)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 두 전직 대통령 사이에는 극단적인 이질감과 묘한 동질감이 공존한다. 예상하지 못한 사이에 '불쑥' 나타나 군부와 여론(선거)의 힘으로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공과(功過)는 있지만, 나란히 한국 현대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전자는 독재로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지만, 당시 국가의 최대 과제였던 국민의 부족한 '먹을거리'를 일정 부분 해결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경제 발전의 기틀을 놓은 점도 지나칠 수 없다. 후자는 평생 민주투사였다고 자랑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생각하지 못한 권력 내려놓기를 시도했다. 많은 국민은 '서민 민주주의'라는 새 틀을 짜려 한 그의 노력에 공감했고,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상징됐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죽음이 내포한 뜻은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은 비극적으로 삶을 끝맺었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 지역'계층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아직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이 지배는 역설적이다. 어쩌면 두 전직 대통령이 남긴 어떤 공(功)보다 더 큰 과(過)로 남을 수도 있는 지역과 세대 갈등을 통한 지배여서다.
이는 두 전직 대통령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지난 2012년의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양 후보의 격차가 30%포인트 이하인 12곳을 뺀 대구'경북'광주'전남'전북에서 양 후보는 80% 이상의 몰표를 얻었다. 격차가 가장 좁았던 대구만 해도 박근혜 80.1%, 문재인 19.5%로 6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이 선거에서는 지역 편향성과 함께 세대 편향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세대 편향성은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맞붙은 16대 대선 때에도 있었지만, 일시적인 분위기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18대 대선에서는 심각했다. 40대를 완충세대로 본다면 50대 이상은 박근혜 후보, 40대 이하는 문재인 후보 지지가 평균 65%를 넘었다(방송 3사 출구율 조사 기준).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의 계승자인 문재인 후보의 급부상,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 등이 낳은 결과로 이미 대선 전부터 예견한 것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1987년 이후 6번의 대선에서 50%가 넘는 지지를 받은 첫 대통령이 됐다. 양강 대결이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문재인 후보도 최고의 차점 득표율인 48%를 얻었다. 그러나 이 높은 득표율 뒤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눈부신 후광이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역 갈등에다 세대 갈등이라는 짐까지 덧얹어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전직 대통령을 동일 선상에 놓고 거론하는 것은 대단히 껄끄럽다. 역사적으로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고, 시각차도 너무나 크다. 또 아직 절대적인 신봉자가 많아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불편하고, 불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좁게는 정치가, 넓게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이 둘의 그늘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좀 더 낮은 자세로 대통령에 걸맞은 포용력과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야 한다. 젊은 시절에 겪은 격동의 세월과 그로 말미암아 형성된 개인 성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기억될 뿐이다.
이는 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보이는 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동료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자족한다면 정권을 잡기도 어렵고, 잡는다 하더라도 한계가 분명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가 겪은 극심한 갈등과 분열이 이를 잘 보여준다.
두 전직 대통령 버리기는 지역'세대 갈등이라는 두 유령 버리기와 같다. 지금의 정치적 기반이 다소 약해질 수는 있겠지만, 이 두 유령을 버려야 나라가 산다. 그래야 국민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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