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제역 두려워한 인간? 인간이 두려웠을 돼지

봉산문화회관 신진작가 지원…최선 씨 작품 '자홍색 회화'선보여

#돼지 332만 마리 도살 고발 자홍색 도장은 잔인함 은유

봉산문화회관이 유망 신진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 공모 프로그램 '유리상자-아트스타'에 최선 작가가 초대돼 4월 19일(일)까지 전시를 갖고 있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12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으며 금천예술공장 세토우치트리엔날레 참여 작가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레지던시프로그램 지원 기금을 받았으며 미국 뉴욕, 타이완 타이베이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했다.

이번 전시에 작가는 설치 작품 '자홍색 회화'(Magenta Painting)를 선보였다. '자홍색 회화'는 현실 사건들이 어떻게 삶의 일부가 되고, 그 삶이 어떻게 예술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탐구한 작품이다. 자홍색은 이번 작품의 모티브다.

자홍색이 의미하는 현실 대상은 돼지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구제역 파동에 휩싸여 강제로 매몰 처분된 돼지들이다. 작가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발생한 구제역 파동과 그에 대한 사회적 대처에 주목했다. 작가는 구제역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332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하면서도 그저 돼지들의 숫자에만 관심을 가졌던 무감각한 우리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다.

자홍색은 도살장에서 돼지 등급을 표시하는 도장의 잉크색이다. 돼지에게 자홍색 도장은 사형 선고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구제역은 돼지에게 죽음을 예고하는 주홍글씨다. 작가는 자홍색을 칠한 얇은 천 11폭을 연결해 커다란 원형을 만든 뒤 이를 공중에 매달았다. 할로겐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작품은 감상적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하지만 자홍색 빛을 발하는 얇은 천에는 구제역으로 살처분 된 332만 마리의 돼지를 의미하는 '돼지0000 001'에서 '돼지3320000'까지의 문자'숫자 조합들이 빼곡히 적혀 있고, 공중에 부유하는 원형이 살처분에 사용되었던 원형 구덩이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을 눈치 채면 작가의 은유에 공감하게 된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쳤던 여러 현상들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하고자 했다. 관람객들에게 가급적 적은 단서를 제공하고 관람객 스스로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작가가 '자홍색 회화'를 통해 표현하려는 메시지는 인간 중심적인 생명 천시 현상에 대한 반성이자 현실이 예술과 연결되는 접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현대 식량공급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공장식 축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이 빚은 역설적 참사에 대한 비판 의식도 담고 있다.

그동안 작가는 피와 뼈, 폐수, 불산가스, 4대강 녹조 등 미술계에서 논란이 될 만한 이질적 재료를 현대미술이라는 장치에 접목시켜 예술이 현실을 비판하는 강한 칼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왔다.

한편 28일(토) 오후 1시·3시, 3월 5일(목) 오후 3시 작가와 함께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 '자홍색 회화 티셔츠 만들기'가 진행된다. 참가비 6천원. 053)661-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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