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소방서 119구조대에 근무하던 그때의 일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생생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겨울을 지나 개구리가 동면(冬眠)을 벗어나 기지개를 켜는 따뜻한 봄날로 기억한다.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난 후 춘곤증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던 중 깜짝 놀란다. "산성산 인근에 조난자 발생! 산악사고 구조출동!" 정적을 깨고 지령이 떨어졌다. 산성산은 해발 653m인, 시민들이 알고 있는 '앞산'의 산자락 중 하나로 대구시민이 등산을 즐기는 곳이다. 구조 공작차, 구급차 등 차량 3대에 대원 7명은 달서구 청소년수련관 쪽으로 출동했다. 관할 내 산과 하천, 저수지 등이 다수 있는 일선 소방서 구조대의 경우, 장시간 인명 검색이나 구조 활동이 필요한 예가 허다하기에 어떠한 신고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출동 중 신고자와 통화를 했다. 조난당한 당사자가 직접 119로 신고를 한 상황이다. 50대 남성으로 의식이 또렷하고 전화기를 휴대하고 있어 빠른 시간 안에 구조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있었다. 조난자는 평안동산 쪽에서 산성산 정상까지 등산 후 9부 능선 정도에서 삼림욕을 위해 한 차례 등산로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침낭을 펴고 두어 시간 낮잠을 자고, 다시 하산하다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평소에도 그렇게 등산과 삼림욕을 하곤 했다는 조난자의 설명이다. 현재는 인근에 사람도 없고 등산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달서구 청소년수련관에 도착하여 산악구조장비를 다목적 지프에 옮겨 싣고 구급차와 대원 7명이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그 이후는 다시 산악장비와 구급장비를 대원이 가방에 메고 등반을 시작했다. 평안동산 쪽 6부 능선부터 2개조로 나누어 등산로를 벗어나 일대를 수색하며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 조난자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 설명해 준 주위를 수색하며 올라갔으나 범위가 좁혀지는 느낌이 없다. 정상에 가까워져도 발견할 수 없어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조난자의 말대로라면 서로 크게 소리치면 들릴 수도 있는 지호지간(指呼之間)일진대, 계속 서로 위치를 알리며 수색해도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조난자는 7부 능선 정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등산로가 아닌 험하고 수풀이 우거진 산중에서 그야말로 동서남북 중 어느 방위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정상으로 가기도 쉽지 않고 산 밑으로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단시간에 종료되리란 기대와는 달리 정상과 능선 사이를 오가며 수색에 꽤 많은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려달라는 조난자는 불안해하고 당황하고 있다. 우리 구조대원도 조급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밤중도 아니고, 도깨비한테 홀린 것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곧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조난자의 휴대전화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상황이었다. 장기전에 대비해 조난자가 소지하고 있는 음식물과 물품을 확인하던 중에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동안 '입산할 때에는 라이터를 휴대하면 안 되는데' 생각을 했지만 잘잘못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수풀이 적은 곳을 찾아 산불로 번질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주위를 안전하게 하고 나뭇잎을 모아 불을 피워 연기가 올라오게 유도했다. 바람이 잔잔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추가로 상황실에 항공대 소방헬기를 지원하고 산 정상으로 다시 이동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든든한 구원의 헬기가 눈앞에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해결은 시간문제라는 안도감이 들었을 때쯤 헬기로부터 "달구벌 제로제로원(대구소방 항공대 1호기) 요구조자 발견"이라는 무전이 날아왔다. 눈에 보이는 헬기는 꽤 멀리 떨어진 위치의 상공에서 제자리비행을 하고 있었다. 연기가 조난 현장을 알려 준 것이었다. 우리는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황당함과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곳은 평안 동산과 반대 방향인 가창 방면 하산길 7부 능선 부근인 것이다. 조난자는 삼림욕을 겸한 낮잠을 자고 난 상황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평소 하산길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가다 길을 잃은 것이다. 그곳이 다니던 등산길인 줄 착각하여 그 일대를 계속 맴돌며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전문산악용어로 '환상 방황'이라 한다. 자신은 목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방향 감각을 잃고 한 지점을 중심으로 맴도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허탈하면서도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나도 저 상황이 되면 똑같을까 아니면 제갈공명이 팔괘를 본떠 만든 팔진법에 갇히면 이런 현상일까. 순간 넘치는 호기심이 들었다 사라진다.
헬기는 우리에게 조난 위치를 재확인시키고 멀리 사라졌다. 구사일생 심정의 조난자는 그야말로 눈앞의 닥친 상황에서 생명의 은인을 맞이하듯 우리 대원을 반겨 주었다. 먼저 조난자의 상태부터 확인하였다. 다행히 약간의 피로 증세가 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낮이라는 시간대가 상황이 크게 악화되지 않은 것이다. 구조된 등산객은 자신이 올라온 등산로와 반대 방향에 있었다는 설명에 매우 당황하였다. 구급차에서 등산객의 상태를 재확인하고 귀가시켰다. 대낮에 도깨비에게 잠시 홀렸던 한 등산객을 찾아 헤매던 날 일몰의 꽃노을이 곱기도 했다.
조우석 대구중부소방서 기동지휘단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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