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미술관에 46점의 귀중한 소장 작품을 기증한 하정웅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은 미술계에서 '기증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재일교포인 그는 1980년대부터 광주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국립고궁박물관, 대전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숙명여대, 조선대,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일본 아키타현 등에 9천800여 점의 미술품을 기증했다. 기증 작품 수와 가치를 감안해 볼 때 개인 이름을 단 미술관이 아니고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번에 이루어진 대구미술관 작품 기증도 그의 예술을 나누고자 하는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하 이사장과 김선희 대구미술관장의 깊은 인연이 자리하고 있다. 하 이사장은 김 관장을 가족(딸)으로 여길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김 관장을 통해 하정웅과 하정웅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 이사장과 어떤 인연을 갖고 있나.
▶1998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로 근무할 당시 일본에서 소외받고 있는 재일교포들의 인권 문제를 조명하기 위한 전시를 준비했다.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에 머무는 동안 하 이사장 집에 머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1999년 재일교포 인권전을 개최했다. 또 1999년 하 이사장이 광주시립미술관에 471점의 작품을 기증까지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2001년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재직할 때 친정처럼 집을 왕래하며 친분을 쌓았고 지금까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하 이사장이 이런 엄청난 컬렉션을 가질 수 있는 부는 어떻게 이룬 것인가.
▶하 이사장은 일본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일찌감치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다. 또 동생들을 업어서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물 좋고 똑똑한 '조센징'이었던 그는 아키타(秋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에서 건축사 사무소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공업사에 취직했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노부부가 하 이사장에게 좋은 조건으로 공업사를 인계했다. 그러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열리면서 공업사가 올림픽 특수를 누리게 됐다. 당시 컬러TV를 주문받아 자전거로 배달했는데 아침부터 새벽까지 배달해도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상당한 돈을 모은 그는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졌다. 부동산 붐이 일어나면서 막대한 부를 쌓게 됐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하 이사장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 이사장이 미술품을 수집하게 된 동기는.
▶하 이사장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화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도쿄로 수학여행을 가서 고흐전을 본 뒤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다. 대신 미술관을 건립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키타현에 '기도의 미술관'을 건립하려고 했다. 수력발전소 건립에 강제 동원된 재일교포를 위로하는 미술관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서 미술관 건립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하정웅컬렉션의 특징은.
▶다른 컬렉션에 비해 성격 및 내용 면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하정웅컬렉션은 애환 어린 재일교포의 삶을 보듬는 차원에서 출발했다.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할 무렵 하 이사장은 우수한 자질과 뛰어난 작품 세계를 갖고 있지만 일본에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재일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러다 차츰 샤갈,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거장과 이우환, 김창열, 박서보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컬렉션 범위를 넓혀갔다.
-개인적으로 하정웅컬렉션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월북 작가 조양규의 맨홀 시리즈 작품이다. 조 작가는 진주 출생으로 제주 4'3항쟁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뒤 창고 노동자로 일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다 1968년 북송선을 탔다. 국내에서는 거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한국 작가로 꼽힌다.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맨홀 시리즈는 회화성과 상징성 등에서 매우 우수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월북을 한 까닭에 남아 있는 작품 수가 많지 않아 희소성 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조 작가는 앞으로 국내 미술계가 조명해야 하는 인물이다. 이 밖에 곽인식 작가의 아방가르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컬렉션과 이우환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컬렉션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평생 모은 미술 작품을 기부하게 된 계기는.
▶미술관 건립이 무산되면서 수많은 작품이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기증으로 눈을 돌렸다. 지금까지 1만 점에 가까운 작품과 자료 등 1만2천여 점을 기증했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기 때문에 현재 하 이사장이 소유하고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그리고 기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품을 구입해서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바로 기증을 해버린다.
-대구미술관 기증에 담긴 의미는.
▶과거 대구미술관에 재일교포 작가 손아유 작품 100여 점을 기증하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기회가 되면 대구미술관에 기증할 의향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제가 미술관장이 되어 기증이 이루어지게 됐다. 이번에는 곽인식 작가와 손아유 작가의 작품이 기증됐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기증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번 기증은 대구에 기증 문화를 꽃피우는 계기가 됐다. 김인한 유성건설 회장과 독일작가 오트마 회얼 등이 하 이사장의 뒤를 이어 기증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 이사장의 삶을 평가한다면.
▶한마디로 인간 승리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했으며 나누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증은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돈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 이사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늘 곁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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