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흙에서 왔으니

지난주 수요일 가톨릭교회에서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사순시기를 시작했습니다. 재를 머리에 얹으며 사제는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깨닫도록 만들어줄 뿐 아니라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즉 인간의 기원과 종착점은 어디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명확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 자신이 흙에서 온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은 다 흙에서 왔을지라도 자신만은 고귀한 것에서 온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더 많은 것을 즐기며 살기 위해, 우리 자신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우리는 흙처럼 겸손해야 하며, 비천한 흙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분께 감사하는 것은 곧 그분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너무나 간략한 말이지만 함축적 의미가 무궁합니다. 회개란 마음을 돌린다는 말인데 사람들은 회개란 말이 자기 자신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회개는 법을 어겨서 형벌을 받는 수형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범법행위를 하지 않은 자신들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들었던 생각의 방식과 살아온 습관의 감옥에 갇혀 있어서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아니 일상적으로 남의 눈의 티끌을 보면서 우리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너무나 세세하고 정확하게 지적하지만, 정작 자신의 잘못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회개를 더욱 요청하고 있습니다.

회개가 일어나려면 우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가치와 생각 그리고 습관을 내려놓고 새로운 가치와 기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색안경과 같은 것입니다. 색안경을 벗지 않고 어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 만든 모든 가치와 기준을 이제 내려놓고 하느님이 주신 기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기준, 즉 복음을 주셨습니다. 복음이란 바로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과 정의 안에 살아가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믿음은 회개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믿음과 회개는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으며 선포된 말씀에 따라 우리 모두 회개를 통해 묵은 것을 버리고 사랑과 정의로 이루어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김명현 대구 비산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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