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대구 희움 위안부역사관 건립 건축가들

석강희·소병식·김혜경·송은경 씨…시민들 모이는 '마당' 됐으면

"위안부 역사관, 시민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마당 같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올해 대구에 문을 열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만들고 있는 젊은 건축가 4명이 지난달 24일 공사 현장 2층에서 역사관 건축 모형을 들고 서 있다. (사진 왼쪽부터) 송은경, 석강희, 김혜경, 소병식 씨.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과거는 어제의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의 과거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 미래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간을 완성한다. 올해 대구에 생기는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하 위안부 역사관)은 아픈 과거의 역사를 미래에 기억하자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 역사관을 만들기 위해 대구의 젊은 건축가들이 뭉쳤다. 역사관 장소는 1920년대식 적산가옥. 일제에 짓밟혔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이 일본식 건물에 담기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지난달 24일, 이곳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하는 석강희(35'ATF 건축사무소 대표) , 소병식(36'에스오 아키텍토스 대표), 김혜경(39'정인건축사무소 대표), 송은경(29'ATF 건축사무소 디자인 실장) 씨 등 대구의 건축가 4명을 만났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저질렀죠"

대구 중구 태평로의 한 건물. 북성로 공구골목 끝에 자리 잡은 이 건물 2층 벽에는 건축사무소 이름 세 개가 나란히 쓰여 있다. 세 건축 사무소는 한 층에 칸막이를 치고 공간을 나눠 쓴다. 2012년 9월 ATF 건축사무소 대표인 석 씨가 실장인 송 씨와 함께 둥지를 틀고서 이듬해 소 씨가 바로 옆에 '에스오 아키텍토스'를 차렸고, 그해 여름 김 씨가 '정인건축사무소'를 열면서 세 건축사무소가 한 지붕에서 살게 됐다.

위안부 역사관 건축에 세 건축사무소가 참여하게 된 것도 한 지붕 아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2년 석 씨가 대구 지역 교수, 시민단체들과 함께 중구청의 근대건축자산 연구를 돕는 일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준비 중이던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측은 이 일을 함께할 지역의 '젊은 건축가'를 찾고 있었고, 석 씨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사실 역사관 건축은 돈을 벌려면 하지 말아야 했을 사업이다. 100년 된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하려면 풀어야 할 법적 문제도 많고, 시민 성금으로 십시일반 모은 사업비는 공사비를 대기에도 빠듯해 적자까지 감수해야 했다. 이제 막 사무소 문을 연 건축가들이 고민할 법도 했는데 어떻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까. 석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엔 작은 집 하나 수리해서 할머니들 쉼터를 만들자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적은 설계비로 리모델링을 해야 해서 계산기를 튕기면 공사를 할 사무실이 없었습니다. 넷이서 한참 고민을 하고 있는데 시민모임에서 우리를 총회에 부르셨어요. 가기 전에 우리끼리 '절대 감정에 휩쓸리지 말자'고 이야기를 하고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들이 오셔서 '건축가 선생님들, 잘 부탁합니다'하고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하는데 거기서 안 하겠다는 소리를 못하겠더라고요. 총회 중간에 나와서 줄담배를 피우며 다시 회의를 했어요. 이건 돈보고 가는 일이 아니다, 그냥 하자고요."

나머지 사람들도 결심의 순간을 고백했다. 그날 총회에는 고등학생들이 와서 춤추고 노래하며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에스오 아키텍토스 대표인 소 씨는 "위안부 추모제나 할머니들 모습은 TV에서 많이 봤었다. 우리보다 밑 세대인 고등학생들도 뜻을 표하고 움직이는데 우리도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하자"고 평정심을 유지했던 정인건축사무소 대표인 김 씨의 마음은 그보다 뒤에 움직였다. 김 씨는 "원래 시민모임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는데 위안부 역사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리려고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봤다.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동참했다"고 말을 거들었다.

◆예측 불가 리모델링, 지하 벙커까지 등장해

건물 면적 234.70㎡의 위안부 역사관은 1920년대 중반에 세워진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건물의 최초 건축 시점을 이때로 '추측'하는 것은 철거 과정에서 벽 문종이 속지로 1927년 자 신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신축보다 어렵다. 헌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리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지만 이 적산가옥은 100년 무게만큼 보수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훼손이 거의 안 된 건물인 줄 알았는데 공사를 하다 보니 주요 목조 구조물이 뒤틀려 있었고, 이를 바로 잡는 데만 꼬박 2주가 걸렸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공사비도 더 늘어났다.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도 하나둘씩 터졌다. 근대 건축물인 공사 현장에서 문화재 조사를 할 때는 문화재급 도자기가 나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면 어쩌느냐는 불안감에 모두가 가슴을 졸였다. 공사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던 올해 초에는 땅을 파는데 지하 벙커가 나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북성로 일대는 6'25 전쟁 이후 지하 벙커를 만든 건축물이 많은 곳이다. 공사 현장을 관리했던 ATF 건축사무소의 송 실장은 "지하 벙커 천장에는 뜻을 알 수 없는 글이 써져 있었고, 정체불명의 병도 있었다. 이 벙커가 나오는 바람에 기존의 단열과 방수, 건물 동선 등 주요 설계를 바꿔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3년째 이 사업에 매달리면서 건축가들도 얻은 것이 많다. 열의에 넘치는 건축가들은 "현지에 가서 제대로 된 적산가옥을 보고 오라"며 지난해 가장 젊은 송 실장을 일본 교토로 출장을 보내 젊은 건축가의 눈을 열어줬다. 각 스타일이 다른 세 건축사무소가 머리를 맞대니 시너지 효과가 났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학을 졸업한 석 씨가 군더더기 없는 독일식 건축을 보여준다면, 가우디의 고향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7년간 건축을 공부한 소 씨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건축에 접목한다. 여기에 한국 건축사인 김 씨가 중심을 잡으며 한국과 독일, 스페인의 건축 철학을 결합하는 기회로 삼았다. 하지만 위안부 역사관에는 건축가의 색깔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역사관은 건축이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형태 없는 건축'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시민 쉼터 같은 역사관이 됐으면

인터뷰가 무르익을 무렵, 이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10분 거리인 역사관 공사 현장으로 걸어갔다. 사다리를 타고 역사관 2층으로 올라가자 마당처럼 생긴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이 마당에는 건축가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시민 성금으로 세워지는 이 역사관의 건축주는 '시민'이다. 위안부 할머니들, 시민단체 사람들, 길 가는 아주머니와 학생, 모두가 자연스럽게 모이고 역사를 공유하는 쉼터같은 마당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역사관 뒤쪽에는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마당의 의미를 강조하던 소 씨가 나무를 보며 설명했다. "2년 전 2월 이 나무를 처음 봤어요. 추운 겨울인데도 나뭇가지 끝에 새싹이 나 있었는데 이 나무가 희망을 붙잡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처럼 보였어요. 시민모임 측에서도 '이 나무를 꼭 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2층에 마당을 만드니 이 나무가 더 잘 보이더라고요."

과거는 잊을 수 있지만 지울 수 없다. 아픈 역사는 더더욱 삭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위안부 역사관에 건축가들이 담고 싶은 메시지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역사와 사실이 기록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담담하게 역사를 보여주고 판단은 보는 사람들의 몫으로 맡기는 것, 우리 건축가들이 바라는 역사관의 모습입니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위안부역사관 건립 4인의 건축가들

●석강희 (독일 건축사)

▷1979년 3월 대구 출생 ▷영남대 건축공학과 졸업(학사),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 졸업(디플롬), 영남대 건축학 전공과정(박사) ▷ATF 건축사무소 대표, 영남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독일 바덴뷔템베르크 건축사협회 정회원

●김혜경 (한국 건축사)

▷1975년 5월 대구 출생 ▷경북대 건축공학과 졸업(학사), 경북대 건축학전공 졸업(석사) ▷정인건축사사무소 대표, 경북대 건축학부 외래교수

●소병식 (스페인 건축사)

▷1978년 12월 대구 출생 ▷영남대 건축공학과 졸업(학사), 바르셀로나 건축대학교 석사, 영남대 건축학 전공과정(박사), YKH 건축사사무소(적도기니), Andres Perea 건축사사무소(스페인) ▷에스오 아키텍토스 대표, 영남대, 계명대 건축학부 외래교수

●송은경

▷1985년 9월 대구 출생 ▷영남대 건축학 전공 졸업(학사), 영남대 건축학 전공 졸업(석사) ▷ATF 건축사무소 디자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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