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요광장] 2·28의 독점

1966년 대구생. 경북대 석사. 계명대 언론학 박사
1966년 대구생. 경북대 석사. 계명대 언론학 박사

"선생님 저 좀 봅시다. 우리를 왜 말립니까?"

경북대사대 부속고등학교 교사였던 이목. 그는 여느 날처럼 운동장을 가로질러 3층 교무실로 출근하다 이행우라는 학생과 맞닥뜨렸다. 이행우는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행우는 절반은 따지고 절반은 애원하는 목소리였다. "선생님, 정의와 민족을 위해서는 생명을 바쳐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1960년 2월 28일 이야기다. 그날은 일요일이었지만 토끼사냥이나 영화 단체관람을 한다며 학생을 등교시킨 학교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날은 수성천변에서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당시 야당의 조병옥 대통령 후보가 병사하자 부통령 선거로 세상의 이목이 옮겨왔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유세에 학생들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휴일 등교 지시를 내렸다.

이승만 정권은 삶에 힘겨워하는 주민들의 절규엔 아랑곳없이 오로지 집권 연장에만 혈안이 되었다. 부정선거를 도모하는 것도 모자라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정치를 일삼았다. 말도 되지 않는 고교생의 휴일 등교 지시도 이처럼 이성을 잃은 정권이기에 가능했다. 휴일 등교는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왔고, 어른들을 대신해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며 거리로 나서도록 했다.

"선생님! 정의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는 생명을 바쳐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정열에 불타던 그 눈동자! 비겁합니다! 외치던 그들의 울부짖음!…." 몇 달 뒤인 5월 4일 자 한 신문에는 대구지역 교원노동조합 결성을 앞두고 한국교원동지의 분기를 촉구함이란 격문이 실린다. 그 격문에는 2월 28일 아침 이행우 학생이 말했던 문구가 그대로 들어 있다.

그날 이행우와 맞닥뜨렸던 이목이 격문의 초안을 만드는 데 참여한 때문일까. 그보단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부정과 불의에 맞서려 했던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큰 울림을 준 것이다. 말하자면 2'28민주화운동은 이행우 같은 평범한 학생들이 배움을 실천한 투쟁이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그런 실천에 화답해야 했으므로 자연스레 이행우의 말을 인용했을 것이다.

대구의 2'28민주화운동은 몇몇의 힘이 아니라 이름 모를 다수의 학생들이 참여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운동의 전개 과정이나 맺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그날 보여준 불의에 대한 항거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했지만 시민들의 보편적인 열망을 대신한 것이었다. 따라서 2'28은 대구 시민정신의 표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지난 1991년 2'28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지고 2013년에 2'28민주화운동기념관이 개관한 것도 이런 2'28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정신으로의 계승은커녕 2'28을 독점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2'28기념사업회가 화석화 또는 관료화되었다는 말을 전직 의장들이 하는 걸 봐도 그렇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관청과 주고받기식의 이해관계도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인다.

기념관 홈페이지(http://www. 228lib.or.kr)에 들어가면 '2'28대구학생민주의거는 가난과 독재, 부정과 불의에 항거한 대구 시민정신의 표출'이라고 돼 있다. 2'28민주화운동 55주년인 오늘, 기념사업회가 대구 시민정신을 한두 가지 표출하는 건 어떨까. 예컨대 당연직인 대구시장과의 공동의장직을 철폐하고, 6개월째 제자리걸음인 경북대 총장의 임용제청 거부에 대해 2'28정신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독재의 쓴맛에도 당당히 맞섰던 초심이 독점의 단맛에 취해서야 되겠는가.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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