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 300년 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온 경주 최 부자의 경영철학과 그들의 고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경주 최 부자 가문은 6가지 가훈을 대대로 실천해왔다. 이 가훈 속에 최 부자 가문이 어떤 태도로 삶에 임했으며, 어떤 태도로 이웃을 바라보았는지 담겨 있다.
첫 번째 가훈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는 경주 최 부자의 시조인 최진립 장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부단히 학문하기에 힘써라. 학문이 없이는 밝음이 없고 밝음이 없는 어둠의 생활은 뭇 짐승의 삶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그러나 벼슬을 목적으로 학문을 하지 마라. 권세의 자리에 있음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아 언제 자신이 칼에 베일지 모르니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고 했다.
두 번째 가훈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는 최진립 장군의 손자 최국선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더 많은 재산을 모르려고 하지 않고 남은 것을 친척이나 마을의 어려운 사람 구제를 위해 썼다.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을 벌기는 쉽다. 그러나 욕심은 욕심을 낳고, 결국 돈이 사람을 잡아먹는 형국에 직면한다는 것을 꿰뚫어보았던 것이다. 최 부자 가문이 300년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기여했다.
세 번째 가훈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최 부자 가문의 인간애를 보여준다. 최부잣집은 어떤 사람이라도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노소는 구별하되 빈부를 가리지 않았고, 상객, 중객, 하객 가릴 것 없이 모두 독상으로 대접했다. 이를 위해 최부잣집의 작은 창고에는 100여 개의 상이 항상 쌓여 있었다. 최부잣집의 1년 소득은 1만 석 정도였는데, 이 중 1천 석은 과객의 식량으로 소비했다고 한다.
네 번째 가훈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는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로 재산을 형성하지 말 것을 강조한 것이다. 흉년기에 땅을 사면 재물을 쉽게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최부잣집은 흉년기에 만석 재산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했다.
다섯 번째 가훈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는 최씨 가문의 검소와 절약정신을 며느리들에게 길러주고, 만민존중사상을 심어주기 위한 재교육이었다. 며느리들에게 이처럼 고귀한 가풍을 물려줌으로써 300년 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섯 번째 가훈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가훈이다. 최 부자는 흉년으로 정부도 어찌하지 못할 때에 창고를 열어 걸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매일 수십 개의 솥을 걸어놓고 죽을 끓여 몰려드는 걸식자들을 먹였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1만 명 정도가 최부잣집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 책은 경주 최 부자 가문의 시조인 최진립 장군으로부터 12세손인 최준까지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부를 쌓고, 어떻게 썼으며, 가훈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가훈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이 책이 기존의 최부잣집을 다룬 다른 책들과 차이점은 ▷경주 최부자가 단 한 번도 갑질을 하지 않았다는 점 ▷최제우의 동학사상과 최 부자 가문의 인민존중사상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 ▷부를 이루고 지키는 최 부자 가문의 경영상 기법을 살펴본 점 ▷경주 최 부자가 일등을 배격하고 항상 이등을 함으로써 오랜 세월 거친 세파를 넘어왔다는 점 등을 살펴보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경주 최 부자가 재산의 절반을 상해 임시정부 김구에게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민족교육을 위해 썼음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그들의 재산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정신철학은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살아있다고 말한다.
263쪽, 1만5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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