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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봄은 어떤 빛으로 올까

▲이향
▲이향

그는 26살의 캐나다인이다. 우연히 영어 스터디에서 만나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고향으로 돌아간다. 내 영어실력은 왕초보여서 그에게 마음을 전달하기란 어림도 없었지만 온갖 표정과 몸짓으로 그나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눈이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서인지 스키를 잘 탄다고 했고, 카누를 직접 만들어 호수를 탐험하기도 하고, 혼자서 자전거 여행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도 즐겼는데 내 시를 노래로 만들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불러 준 적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으며, 자유로움 속의 책임의식이 그를 신뢰하게 했다. 그와 영어 공부를 하는 동안 그들의 삶을 슬쩍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들은 생활 속에서 배우고 익히며 자연스럽게 삶의 방법을 터득하는 것 같았으며, 자신이 필요한 것은 자기 손으로 만들어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작은 소지품에도 손때와 윤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부모님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그를 보면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에게 공부만을 강요하거나 또래들과 비교하며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겐 조금 낯선 모습이었다.

3월, 노란 산수유 꽃망울 같은 아이들이 입학식에 가는 모습을 본다. 친한 후배도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다고 무척 들떠 있다. 벌써 아이의 공부 분위기를 위해 모든 것을 새것으로 준비해두고 100m 달리기 출발선 앞에 선 사람처럼 엄마가 더 긴장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누구보다 빨리 달려야 할 것이다. 뒤따라오는 친구가 넘어져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필요하다면 즉시 구해주고, 공부 외에 그 어떤 것도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혹시 엄마의 생각으로 아이를 점점 핏기없는 얼굴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오로지 책상 앞에 앉아 시험 점수만 올리면 만사형통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삶이란 어떤 색깔일까. 문득 라는 인도 작가의 설치미술이 생각난다. 새삼 '배'와 '강'의 관계를 되짚어 본다. 부끄럽게도 나도 자주 그 관계성을 혼동하는 엄마였음을 고백하며, 이제 막 학부모가 되려는 후배에게 내 친구의 이야기를 귀띔해줘야겠다. 그는 떠나기 전 바나나향이 나는 케이크를 직접 구워왔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담긴 것을 선택하는 그는 나를 또 한 번 따스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부디 복이 꽉꽉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날 며칠 바늘에 찔려가며 수선화 한 송이가 어설프게 수 놓인 빨간 복주머니를 그에게 건네 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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