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여태까지 우리 사회가 용인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관행과 풍습에 대해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공직자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대한민국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를 내놓는 계층도 적잖아 김영란법의 결과물이 우리 사회에서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공무원은 자식 결혼도 죄냐, 형제한테도 백만원 못 받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란 이름을 가진 이른바 김영란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만 명이 일하는 대구경북지역 관가는 3일 하루종일 술렁였다.
상당수 관가 사람들은 "지금도 직무 관련 금품 수수 때는 해임 이상의 처분을 당하고,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금품'향응을 받으면 '청렴의무 위반'이라는 비위 혐의를 적용시켜 최대 파면까지 시키는 판에 무슨 법을 또 만드나. 공무원들이 언제까지 부패 척결의 대상으로 내몰려야 하느냐"고 했다.
사립학교 교원 등 공무원들과 함께 적용 대상이 된 직업군들도 "사립학교가 공공기관인가"라고 되물으며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 구청 공무원은 "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모든 공직자가 공감하고 있다"며 "그러나 업무와 무관하게 받는 것에 대해서도 무조건 처벌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무원 신분이지만 가족에다 친척, 친구도 있는데 각종 경조사에서 이들이 업무와 무관하지만 전달해오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번 법은 과잉 논란을 부를 거라고 했다.
안동시청 한 공무원은 "김영란법이 예외규정으로 두고 있는 '사교나 의례'에 대해서도 정확한 법 규정이 안 된 상태라 수사기관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애꿎은 피해자 양산이 우려된다"고 했다.
김영란법 8조 3항에는 공직자가 돈이나 음식을 접대받더라도 사교나 의례에 해당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는 것.
이 공무원은 "규정이 애매한데 이러다 보면 낭패를 볼 수 있다"며 "법이 과한 처벌 규정을 담다 보니 법 적용 과정에서 물의를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상주시청 한 공무원은 "공무원도 억울한 면이 있지만 언론인까지 포함시킨 것은 여론 형성자들을 길들이기 하는 것 아니냐는 느낌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주시청 한 공무원은 "요즘 돈 받고 상품권 받는 공무원이 있느냐"며 "대다수 공직자는 이번 법에 크게 해당 사항이 없을 것이지만 공직사회의 경직과 분위기 침체를 가져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 한 사립고 관계자는 "국'공립학교 교원이 법 적용 대상이라고 사립학교 교원도 포함시켰다는데 사립학교 교원은 국'공립학교와 법적으로 지위가 다르다"며 "사립학교가 공공기관이 아니듯 사립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 또한 공무원이 아닌데 왜 포함시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와 상당수 시도민들은 "김영란법 시행은 일단 반길 일"이라고 했다. 한국사회가 관주도형 사회인 만큼 공직사회가 맑아지면 사회 전체가 깨끗한 풍토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영국 문경대학 총장은 "김영란법은 비정상화로 가는 대한민국을 정상화의 기준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를 계기로 아직도 공직사회에 남아 있는 전별금 등 '돈 문화'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사회·경북부
◇술집·골프장 "망하란 소리"
김영란법의 통과는 역내 골프장 등 레저업계에다 농수축산업 등 유통업계에 태풍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선물시장' '접대시장'이 무너질 것이라고 이들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술집과 식당가, 선물용품을 생산하는 업체 등은 내년 9월 법 시행 이전부터 움츠러든 관가 분위기로 인해 타격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안동의 한 골프장 관계자는 "대통령이 골프 활성화 방안을 지시하는 등 골프 내수시장 침체를 돌파하는 분위기가 마련돼 기대가 컸었는데 김영란법이 자칫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고민"이라며 "아무리 골프를 재정적으로 후원받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당당히 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 인근 한 골프장 관계자도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골프장 법인 회원권이 현재 시세의 절반 가까이 하락할 것이다. 몇억원짜리 법인 회원권을 사는 이유는 접대를 위한 것인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회원권이 필요없어질 것이다. 골프장이 국내 서비스업계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큰데 법인 회원권 가치 하락은 골프장의 공멸을 가져온다"고 털어놨다.
특히 안동간고등어와 안동마, 버버리찰떡 등 경북도 내에서 선물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들은 벌써부터 고민을 하고 있다. 주요 명절 선물 구입 고객인 법인들의 수요 감소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들 선물 유통업체들은 "가뜩이나 내수 경기가 위축돼 제2의 외환위기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불경기가 심각한데, 김영란법 통과로 선물 수요가 줄면 우리는 어떡하느냐"며 "사정기관이 유통업체에 선물 구입 및 발송 현황을 내놓으라고 할 것으로 보여 영업위축이 불가피하다"고 하소연했다.
농어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성주군 한 농민은 "쌀농사가 무너진 지금 농업 현장은 하우스병 등 갖은 고통을 참아내며 참외 등 특작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며 "하지만 김영란법 때문에 선물 돌리는 풍습이 무너지면 참외 등을 재배하는 과수농가는 농사를 접어야 한다"고 털어놨다.
경북부
◇"시민단체·의사 왜 빠졌나"…대기업 직원·변호사 제외 논란
김영란법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법 적용 형평성을 두고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공무원은 물론 사학 교직원, 언론사 임직원까지 법 적용에 포함했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시민사회단체와 변호사, 의사 등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법안 심의 과정에서 '제재 예외 활동' 범위를 폭넓게 인정되도록 수정한 것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 내에서도 "시민단체가 실제로 정부에 압력을 넣고 부정청탁을 받는 사례가 심심치않게 있는데도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시민단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며 "사립학교 교직원은 대상이 되고 시민단체는 빠진 것에 대해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무위가 법안을 심사하면서 시민단체'정치인의 '제재 예외 활동'이 더 폭넓게 인정되도록 수정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애초 정부 원안에는 예외조항이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로만 규정돼 있다.
하지만 정무위 최종안에는 여기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도 제재할 수 없도록 문구가 추가됐다.
여기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과 시장'군수'구청장 등 광역'기초단체장뿐 아니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사무처 당직자, 참여연대 등과 같은 시민단체도 해당된다.
새정치연합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원칙이 없다. 대기업 관계자'변호사'의사'시민단체는 왜 뺐느냐"면서 "최근 론스타 측에서 시민단체 대표가 거액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본인들이나 시민단체의 면책에 공을 들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이 내년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만큼 시행일 이전에 형평성 논란이나 위헌 소지가 있는 항목에 대해서는 개정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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