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같이 가, 처녀!

한 할머니가 길을 가고 있는데 웬 총각이 자신을 따라오면서 애타게 소리쳤다.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할머니는 황당하면서도 내심 흐뭇했다. 처녀 시절 프러포즈 받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온 할머니가 손자에게 자랑삼아 말했다. "뒷모습만 보면 나 아직 아가씨 같은가 봐. 길에서 따라오는 사람 다 있더라." 그러자 손자가 말했다. "할머니, 다음엔 보청기하고 나가셔요."

다음 날 할머니가 꽃단장하고 나섰는데 다시 그 총각이 따라왔다. 할머니가 보청기를 꼈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

나이가 들면서 감각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숙명 같은 일이다. 수정체의 탄력성이 퇴화하면서 돋보기가 필요해지고 망막 주변부 신경세포가 감소하면서 시야각도 좁아진다.

감각능력 중에서 나이가 들면서 가장 현격하게 떨어지는 것은 청력이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즉, 가청 주파수는 20~2만㎐이다. 그러나 중'장년 성인의 경우 1만㎐ 이상의 소리를 듣기 어려워지고, 심지어 5천㎐ 이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도 적잖다. 가는귀먹게 되면 TV 볼륨을 높이게 되고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으며 상대 소리를 못 알아듣다 보니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커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소음성 난청으로 진단받은 전체 환자 중 38%가 30대 이하였다. 특히 10대 환자는 최근 5년 사이 30% 가까이 증가했다. 청력 손상의 주범은 이어폰과 스마트폰이다. 볼륨 높인 이어폰의 장시간 사용으로 귓속 달팽이관이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3월 3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귀의 날'이었다. 3이라는 숫자가 귀 모양과 비슷해서 이 날로 정했다고 한다. 한국이비인후과학회가 정한 '귀의 날'은 9월 9일인데 이 역시 귀 모양에 착안했다.

소음성 난청 증가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할 수 없지만,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제 귀 막힌 줄 모르고 언성 높이는 형국이다. TV토론프로그램을 봐도 대화는 없고 고성이 판을 친다. 나이가 들수록 더 아끼고 잘 관리해야 할 신체기관은 귀이다. 더 많이 듣기 위해 활짝 열어놔야 하기 때문이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면서 입과 달리 눈과 귀를 둘씩 달아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