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24시 현장기록 112] 신임 경찰관의 희로애락

2011년 겨울, 나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경찰관이라는 부푼 꿈을 갖고 순경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찰행정학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공부를 했고, 나중에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 생각은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5번의 도전 끝에 2013년 12월 6일 합격의 영광이 찾아와 꿈에 그리던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했다. 교육을 마치고 발령받은 곳이 바로 지금 근무하는 대구 성서경찰서 신당지구대다. 처음에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던 지구대 생활이었는데 어느새 5개월 가까이 되어간다.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선배님들과 함께 직접 순찰하면서 주민들과 직접 마주하며 몸소 느낀 지역경찰 신임순경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다.

먼저, 희(喜)에 얽힌 일화이다. 지난해 9월, 경찰청에서 112신고에 대한 포스터 공문이 내려와 학교에 공문을 전하러 방문했다. 나는 한 초등학교 행정실에 공문을 전해주고 순찰차에 탔는데 누군가가 차 문을 두드렸다. 한 꼬마 남자아이였다. 창문을 내려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아이는 선배님과 나에게 "충성"이라고 경례를 하며 순찰차와 경찰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릴 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나쁜 짓 하면 경찰관이 잡아간다"고 하면서 경찰을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게 하는데 이 녀석은 오히려 경찰관에게 먼저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경찰차 모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경찰차 밖 색깔은 경찰관이 직접 칠하는 건지 등의 말도 안되는 질문들을 하였지만 질문받는 나는 오히려 재밌고 즐거웠다.

노(怒)는 술 취한 아저씨에 얽힌 일화이다. 그날 야간에는 유난히 폭력에 관한 신고가 많았다. 여러 사건을 처리하고 교통거점근무를 하러 가던 중 폭력에 관한 신고를 접수하였다. 119까지 출동해 있어서 심각한 상황이라 판단해 신고자에게 얼른 연락을 취했다. 때마침 술에 취한 아저씨가 선배님과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선배님과 나한테 폭력사건도 다친 사람도 애초에 없었다면서 자기가 어떤 오락실에서 오락했는데 돈을 다 잃었다면서 출동한 우리에게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되는 일로 신고를 하여 경찰관에게 되레 큰소리를 치는 일 때문에 그날은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정된 인력으로 넓은 관내의 모든 신고를 처리하는 경찰관의 노고를 알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상황이 황당했다.

애(哀)는 한 20대 미혼모 이야기다. 지난해 10월 어느 날, 술에 취한 여성이 있다는 112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20대 여성이 공원 벤치에서 정신을 놓고 누워 있었다. 벤치 주변에는 40, 50대의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 아저씨들이 112신고를 했다고 했다. 아저씨들은 자기들끼리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젊은 여성이 술 한잔 달라고 하기에 한 잔 줬을 뿐인데 마시고 저렇게 쓰러져버렸다며 집까지 바래다주라고 했다. 나는 그 여성을 진정시키려고 말을 걸었으나 그 여성은 "언니 힘들어, 아기도 싫고 다 싫어"라면서 울부짖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편의점 종업원이 아기를 안고 나와 "저 아가씨가 잠깐 나한테 아기를 맡겼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선배님과 나는 여성과 아기를 지구대로 데려왔다. 여성을 집에 데려다 주려고 집을 방문했지만, 부모님도 다들 편찮으셔서 아기와 여성을 각각 보호센터로 보냈다. 우는 아기도 불쌍했지만 20대 미혼모 여성이 더 안타까웠고 불쌍했다. 그 사건을 마치고 퇴근하는 내내 그 여성이 생각나던 하루였다.

마지막 락(樂)은 길잃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상황근무를 하고 있는데 80대 할머니가 길을 잃어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며 지구대로 오셨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대구 아들 집에 며칠 묵는 중이었는데 잠깐 약국에 가려고 나왔다가 길을 잃었고 지구대도 물어서 겨우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신분증이 있어서 신원조회를 해보았지만, 할머니는 1인 가구였고 가족 찾기는 더욱 곤란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할머니의 아들이 다사 임마누엘교회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인터넷상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집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셨느냐고 물어봤더니 40~50분 정도라고 하시기에 나는 우리 관내에 있는 임마누엘교회를 찾아봤다. 겨우 알아낸 교회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보니 문이 닫혀 있어서 할머니를 다시 지구대로 모셔왔다. 다시 교회 인근 시장 상인들에게 수소문해 본 결과 할머니 아들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옛날 순사라고 하면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는데 요즘 순경은 아주 친절하다면서 아낌없이 칭찬해주셨다. 그때 나는 이래서 경찰관을 하는구나, 일할 맛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속담 중에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일 배우는 것이 더디기에 목표를 낮게 잡고 차츰차츰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면 나에 대해 실망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신임 경찰관으로 근무한 지 다섯 달이 다 되어간다. 모든 것이 낯설고 당황이 되지만 이 또한 차츰차츰 내 방식대로 높은 목표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전력을 기울인다면 국민도 경찰에 대해 만족하고 나 또한 이 일에 만족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신송이 대구 성서경찰서 신당지구대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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