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김치 냄새" 대사 논란
#문화적 다양성 없는 인물 표현법
#내가 누구인가·한 번만 날아보자
#삶에 대한 성찰 깊은 좋은 수작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화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을 받으며 올해의 진정한 강자로 우뚝 선 영화 '버드맨'은 액션 히어로 영화가 아니니 오해 마시길.
개봉도 하기 전에 영화는 인종차별주의 표현으로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도 영화팬들 사이에서 '김치 논쟁'은 계속된다. 이게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영화를 홍보하는 수단이 될지, 비호감 백인 우월주의자에 대한 반격이 될지 막이 올랐다. 논쟁의 원인이 된 사건은 간단하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 버드맨의 딸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뉴욕의 한 상점에서 꽃을 사며 "꽃에서도 빌어먹을 김치 냄새가 난다"라고 말한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분명히 기분 나쁜 일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뉴욕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그곳 식료품점에서는 꽃과 음식도 판다. 꽃에서 김치 냄새가 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게다가 한국인 얼굴에 대놓고 김치 냄새가 난다는 비하의 표현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대사를 영화의 맥락 안에서 들으면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미성숙한 여자이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가치와 필요도 못 느끼는 교만한 보통 이하의 미국인 여자이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김치'라는 대사는 그녀의 캐릭터 성격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표현일진대, 필자는 오히려 '빌어먹을 스시'나 '빌어먹을 카레' '빌어먹을 딤섬'이 아니어서 좋다. 이는 할리우드 주류영화가 한국적인 것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며, 이제 서양인이 우리 것에 대해 뭐라고 하던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넉넉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호감의 시선을 가지고 이 영화를 거부한다면 당신의 인생에 남을지도 모를 훌륭한 영화 한 편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영화는 훌륭하다. 예술성, 세련된 만듦새, 인생에 대한 통찰, 스토리텔링, 연기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있으며 재미까지 있다. 멕시코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다문화적인 작품이다. 내리막길을 걷지 않는 할리우드가 왜 늘 성공하는지의 이유이기도 하다. 개방성과 유연성, 이것이 할리우드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다.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1990년대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톱스타 자리에 올랐지만 60세가 된 지금은 잊힌 배우가 되었다. 그는 꿈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한다. 대중과 멀어지고, 작품으로 인정받은 적 없는 배우에게 현실은 그의 이상과 거리가 멀다. 재기에 대한 강박과 심각한 자금 압박 속에, 평단이 사랑하는 주연배우(에드워드 노튼)의 통제 불가 행동들, 무명배우의 불안감(나오미 왓츠), SNS 계정 하나 없는 아빠의 도전에 냉소적인 매니저 딸(엠마 스톤), 연극계를 좌지우지하는 평론가의 악평 예고까지, 버드맨 리건의 다시 날아오를 날은 요원해 보인다.
리건은 배우 마이클 키튼의 경력이 '배트맨' 이후로 지지부진해졌던 사실을 반영한다. 할리우드의 지적인 연기파 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깐깐하다는 점, 나오미 왓츠가 오랫동안 무명생활을 했다는 점 등 조연 캐릭터 또한 실제 배우의 삶을 영리하게 패러디한다. 영화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전 리허설 날과 다음 날 연극 개막일까지 1박 2일에 걸쳐 펼쳐지는 긴박한 공간을 담는다. 이러한 긴박감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영화는 커트로 이루어진 편집을 쓰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긴 쇼트로 이루어진다. 카메라가 주인공을 빠르게 따라가고 인물들과 배경을 역동적으로 담아내는 놀라운 실험적 촬영으로,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츠키는 지난해 '그래비티'에 이어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다.
영화의 연극은 에드거 앨런 포 이후 미국 최고의 단편소설가로 추앙받는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는 마술적 리얼리즘 스타일,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몽환적 서사, 실제 배우의 삶이 반영된 연기 등 어디까지가 판타지이고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모호하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선 세상에서,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소설을 쓴 작가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담는 환상영화는 역설적으로 영화가 표방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공적인 세상에서 진짜는 무엇인가' '내가 누구인지 아는 자 누구인가'가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다.
남미계 대표감독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뒷무대의 냉혹한 얼굴과 퇴물 배우의 절규는 웃기고도 슬프고, 또 잔인하다. 죽음과 삶의 지속이라는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희극적인 몸짓으로 구슬프게 보여주는 마이클 키튼은 적역을 만나 일생일대 최고의 열연을 펼친다. 그리고 리건과 우리 모두에게 소리친다. "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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