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종시 통신] 언어의 신중함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어의 신중함은 중요시되지만 특히 유교문화권에서 말의 중요성은 군자의 기준이 될 만큼 각별하게 여겨졌다.

진나라의 대학자 부현(傅玄)은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病從口入 禍從口出)라고 할 정도였다. '논어'에 따르면 공자는 '흰 구슬의 티는 갈아내면 되지만,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는 시구를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해 외우는 제자를 선뜻 조카사위로 삼기도 했다. 언어의 신중함을 중요시하는 제자의 태도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최근 말실수로 구설에 오르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이완구 국무총리다. 기자들과 사석에서 한 말이 일파만파 퍼졌고, 그 여파로 당초 기대를 모았던 '책임 총리'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여론 수렴 절차 없이 저가 담배 생산을 고려하다가 여론에 뭇매를 맞았다. 금연 인구 확산을 위해 담뱃값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다시 흡연 인구를 늘리려 하는 등 정책 혼선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국토교통부의 한 산하단체 부사장 A씨가 국토교통부 출입 기자들과 저녁을 하면서 신공항에 대한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이 자리에서 "공항 분야에서 오래 일해 왔기 때문에 신공항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다"며 "신공항은 반드시 생겨야 하고 가덕도도 좋은 위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 날 확인해 본 결과 A씨는 "저는 부산 가덕도의 '가'자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며 해당 기사를 부정했다. 이 언론사도 관련 인터넷 기사 삭제 방안을 논의하는 등 A씨가 가덕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논란이 일어난 자체에 대해서는 A씨가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대통령도 신중하게 발언하는 민감한 대형 국책 사업에 대해 기자가 오해를 살 수 있게 처신했다는 점에선 책임이 불가피해 보인다.

영남권 차기 동력 사업으로 추진되는 신공항 건설 사업은 현재 입지결정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입지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A씨가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얏나무 가지 밑에서 함부로 갓끈 고쳐 맨'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그의 남은 공직 생활에 흠집을 줄 것 같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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