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국민의 의무이지만 이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조세법을 만들어 소득이나 재산에 따라 세금을 달리 내도록 해 불평을 잠재울 뿐이다. 하지만 전제군주가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던 과거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희한한 세금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과거 납세자들은 군주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법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국가의 지나친 과세가 도리어 납세를 꺼리게 한 셈이다. 인류 역사에 황당무계한 세금이 얼마나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돈에는 냄새가 없다"-오줌세
로마 최초의 평민출신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영토 확장에 돈이 많이 들자 이를 해결할 획기적 방안을 찾아냈다. 바로 '오줌세'이다. 당시 로마에는 길거리 곳곳에 공중화장실이 있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중화장실의 오줌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 양모 가공업자들이었다. 이들이 공중화장실의 오줌을 양털의 기름기 제거에 이용하자, 베스파시아누스는 공중화장실이 국가 재산이니 오줌을 퍼가려면 돈을 내고 가져가라고 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베스파시아노'(vespasiano)가 공중화장실을 뜻하는 말이 됐다. 오줌세에 반발이 일자 베스파시아누스는 "돈에는 냄새가 없다"고 일갈했다.
◆숨 쉬는 것도 성은?-공기세
오줌에 과세하는 건 애교 수준이다. 사람이 숨 쉬는 공기에다 세금을 매긴 경우도 있다. 프랑스 루이 15세 때 재무장관이었던 에티엔 실루엣은 '공기세'를 시행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도 루이 15세의 은혜라는 명분이었다. 공기세는 각계각층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폐지됐고, 실루엣 역시 장관직에 오른 지 4개월 만에 물러나야 했다. 실루엣의 짧은 임기를 상징하는 그의 이름은 '지나가는 그림자' '짧은 시간 동안 인식되는 모습이나 형상'이라는 의미로 사전에 실리게 됐다.
◆모자 안 상표는 세금의 흔적-모자세
영국 신사를 떠올릴 때 빠짐없이 연상하는 것 중 하나가 높은 모자이다. 18세기 영국에선 모자에 세금을 매기는 황당한 제도가 있었다. '모자세'는 일종의 부유세로 1784년부터 1811년까지 영국에서 남자 모자에 부과한 세금이다. 부자들은 고가의 모자를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싸구려 모자 한두 개가 고작이었다. 영국 정부는 부자들에게 손쉽게 세금을 거둬 들이려고 모자 가격에 따라 3펜스에서 2실링까지 차등적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또 모자를 살 때 세금을 내면 모자 안쪽에 납세가 완료되었다는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 도장을 위조했다가 적발되면 최고 사형에 이르는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오늘날 모자 안쪽에 상표 태그를 붙이는 것은 과거 모자 속에 증지를 붙이거나 스탬프를 찍었던 데서 유래했다.
◆너의 수염을 허하노라-수염세
조선말 개화기 때 단발령이 제정된 것과 유사한 일이 제정 러시아에서도 있었다.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표트르 대제는 돈을 내고 수염을 기를 수 있는 '수염세'를 도입했다. 표트르 대제는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러시아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서유럽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수염을 자르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한발 물러선 표트르 대제는 수염을 기르는 대신 해마다 100루블씩 수염세를 내도록 했다. 효과는 빨리 나타났다. 세금을 내기 싫은 러시아인들은 수염을 깎기 시작했고, 제도 도입 7년 만에 러시아에서 턱수염은 자취를 감췄다.
◆창문이 사치품?-창문세
온갖 희한한 세금 중에서도 최고봉이라는 오명은 '창문세'가 갖고 있다. 창문세를 최초로 고안한 국가는 프랑스로, 1303년 필립 4세는 왕권 강화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자 여러 종류의 세금을 신설했다. 그중 하나가 창문세로 짧은 기간 징수된 후 곧바로 폐지되었는데, 이후 1696년 영국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부자들이 사는 집에는 창문이 더 많이 달렸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창문을 없애려고 진흙으로 막아버리거나 아예 창문이 없는 건물을 짓기도 했다. 창문세가 얼토당토않게 들리지만 나름 근거는 있었다. 당시만 해도 유리가 고가라 창문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야-문세
우리 역사에도 황당한 세금이 있었다. 조선 후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살리고자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 중건에 나섰다. 대규모 토목공사 때문에 재정이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흥선대원군은 1867년 2월부터 6년 8개월이나 서울 사대문(숭례문, 숙청문, 흥인문, 돈의문)을 지나다니던 사람에게 물품과 수량에 따라 최대 4푼까지 '문세'(門稅)를 거뒀다. 그나마도 이를 걷는 군인들이 돈을 착복해 백성의 큰 원성을 샀다. 이 때문에 최익현이 1868년 사대문 통행세의 폐지를 상소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조선시대에는 '곽세'(藿稅)라고 미역을 따는 사람에게 받던 세금이 있었다. 당시 미역 채취를 하던 해척(海尺)들은 대개 4∼8월에 미역을 따서 팔고 이듬해 2월까지 국가에 일정한 곽세를 바쳐야 했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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