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정창권 지음/푸른역사 펴냄
2013년에 33만 쌍이 결혼했고, 11만 쌍이 이혼했다. 물론 이혼한 11만 쌍은 전체 부부에서 나온 수치다. 이런 추세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그야말로 모든 부부 중 3분의 1은 이혼할 수도 있겠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대 커플의 평균 연애 기간은 100일 이내라고 한다. 서로 좋아서 만났지만 그 만남은 지극히 짧았던 셈이다. 그에 비하면 조선시대 부부들은 얼굴조차 모르고 혼인했지만 평생 반려자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서로 좋아서 맺지도 않았던 결혼생활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 '조선 부부에게 사랑을 묻다'는 '역사 인터뷰 형식'으로 조선시대 부부의 사랑과 결혼,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지은이는 조선시대 부부들이 얼굴도 모른 채 만났지만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던 배경에 대해 "우리는 조선시대 부부관계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흔히 조선의 부부관계가 대단히 남성 중심적이고 권위적이며, 심지어 폭력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조선시대 부부들은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늘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했다. 끊임없이 시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눈 부부들도 있다. 지우(知友), 즉 나를 알아주는 친구요, 나아가 서로를 키워주는 '인생동료'가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도 많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 부부간의 사랑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경북 안동의 이응태 부부의 사연이다. '원이엄마'의 편지로 세상에 나온 이들 부부의 사연은 소설과 오페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을 눈물 흘리게 했다. 남편이 31세에 요절하자 출상하기 전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편지를 써서 관에 넣었다. 이 편지는 420년이 지난 1998년 택지 개발사업 과정에서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아내가 눈물로 쓴 편지는 훼손되지도 않았다. '여보,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셔놓고…. 어찌 그런 일은 생각하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었소'라는 문장은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젖게 했다.
조선시대 부부의 사랑은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과정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부부는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이였으며, 소통을 중시했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전라도 담양 사람 송덕봉과 그의 남편 유희춘은 평소에 끊임없이 시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였다. 서로를 알아보는 지우였던 것이다. 조선 영조 때 사람 이빙허각과 그녀의 남편 서유본 역시 인생의 동료이자 학문의 동료였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면서 동료로서 지원했다. 그들 사이에는 100가지 꽃잎을 따서 담근 술, 백화주(百花酒)이야기가 전해온다. 남편은 아내가 학문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해마다 온갖 꽃을 따다가 술을 빚어서 대접했다.
조선 영조, 정조, 순조 때 사람 강정일당은 스무 살 때 자신보다 여섯 살 연하인 남편 윤광연과 혼인했다. 윤광연은 아내를 벗이자 스승처럼 여겼다. 아내가 죽은 후에는 문집을 대대적으로 간행하기도 했다. 요즘 부부간에도 찾아보기 힘든 지교를 실천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부부들이 모두 서로를 끔찍이 위하고 존경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중기까지는 매 맞는 남편도 더러 있었고, 아내에게 쫓겨나 객사한 남편도 있었다. 남편의 수염을 뽑아버린 아내, 남편과 간통한 종을 돌로 때려죽인 아내, 남편이 아끼는 집안 여종의 손을 잘라 남편에게 보낸 무서운 아내도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시대상과 부부관계는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성리학적 문화가 정착되기 전에도 아내가 남편을 끔찍이 존경하는 경우도 있었고, 유교적 풍습이 자리 잡은 뒤에도 남편과 아내가 상대 알기를 동네 강아지처럼 생각한 경우도 있었다. 부부관계는 어떤 이론이나 풍습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개별적인 관계인 모양이다.
286쪽, 1만5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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