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러시가 우리나라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1920년대 식민지 시기의 조선에서는 골드러시 열풍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나서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벼락부자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폐간 일보 직전의 조선일보사를 인수해서 식민지 최고의 언론사로 성장시킨 방응모 역시 골드러시 열풍 속에서 부자가 된 사람 중의 하나였다.
동아일보 정주지국장을 그만두고 금광을 찾아 나선 방응모가 마침내 금광을 발견한 것은 1928년의 일이었다. 금광 매각으로 받은 돈이 145만원, 지금 돈으로 대략 1천740억원 정도로, 이 거금 덕분에 방응모는 단숨에 조선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로 등극하였다. 엄청난 부를 갑자기 손에 쥔 후 방응모는 의외로 수익성이 보장되는 사업을 두고 언론사에 손을 대었다. 조만식의 권유에 따라 1933년, 적자에 허덕이던 조선일보사를 인수한 것이다.
조선일보사를 인수한 방응모의 경영감각은 놀라웠다. 인수 기념으로 식민지 시기 신문 발행 사상 최고 부수인 백만 부를 발행하여 전국에 무료 배포하는가 하면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본사 헬리콥터를 띄워 에어쇼를 개최하였다. 동아일보, 매일신보 등 당시 발행되고 있던 신문의 발행부수를 모두 합해도 10만 부 겨우 넘어서던 시기였다. 연이어 태평로에 최고층의 신사옥을 짓는 등 일반 대중들에게 조선일보사의 위용을 공격적으로 과시해갔다.
방응모의 공격적인 경영전략 덕분에 조선일보사는 폐간의 위기를 벗어남은 물론, 인수 3년 만에 당시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던 동아일보를 두 배의 격차로 따돌릴 수 있었다. 방응모는 조선일보사 인수를 시작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문화적 기획을 진행시켜 갔는데, 그 첫 단계가 성인 일반을 대상으로 한 종합잡지 '朝光'(조광'1935)의 발간이었다. 상업주의적 판매방식을 도입하고, 방응모 자신의 고향인 평안도 인맥을 철저하게 활용하여 이광수, 김동인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집필진으로 확보함으로써 근대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방응모는 '조광'에 이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 '소년', 여성일반을 대상으로 한 잡지 '여성', 그리고 마침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잡지 '유년' 등을 속속 발간하였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 여성, 성인 남성에 이르는 조선 전 국민을 조선일보의 문화적 시스템 속에서 통합하는 거대한 기획이 1930년대 조선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문화적 기획의 지향점이 어디였던가 하는 점이다.
방응모는 이들 잡지의 발행을 통해 조선의 민중을 계몽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30년대 상황은 방응모의 꿈을 현실화할 수 없는 시기였다. 태평양전쟁을 향해가던 1930년대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조선민족은 황국신민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응모의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을 향해가던 전시체제 대중 동원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언론과 문학의 역할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광'을 비롯한 종합대중잡지들이야말로 이 흐름의 가장 선봉에 설 수밖에 없었다.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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