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중에서)
엘지아 부피에, 우연히 그의 영상을 만났습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 알프스의 끝자락 고원지대에 삼림자원의 분별없는 남벌로 인해 황폐해진 몇 개의 마을과 버려진 땅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살았으나 무자비하게 남벌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들조차 살 수 없게 되어 버린 땅. 그곳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서로 경쟁하며 투쟁하였고, 시기하며 질투하고, 경계하며 살인하고 좌절 가운데서 굶주린 야수처럼 서로 물어뜯다가 지리멸렬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떠나 버린 그 폐허의 땅에 들어가 거의 반세기를 오직 나무를 심으며 살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엘지아 부피에입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고, 자신의 소유지도 아니었고, 그 자신이 무슨 득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나무를 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를 계속해서 쉬지 않고 심었습니다.
마을은 다시 사람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약간 흐릿한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부피에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작품의 감독인 프레데릭 벡은 광택을 없앤 아세테이트 위에 단지 색연필로만 5년 6개월 동안 매달려 완성하느라 한쪽 눈을 실명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감독도 또 한 명의 부피에였던 셈입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한학(漢學)을 전공한 선배로부터 '대학'과 '중용'을 배웠습니다. 다른 여분의 시간에는 중국 역사 관련 책들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사기' '삼국지' '열국지' '손자병법' 등은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대장부는 그 지위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하고자 하는 바가 어떠한가를 소중하게 여길 따름이다'는 말을 자주 가슴에 새겼습니다.
삶의 고귀한 가치들은 지위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고자 하는 바가 이뤄가는 것입니다. 지위가 사람을 누르고 그것이 본질인 양 떠드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지위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지위를 바라는 사람들뿐입니다. '하고자 하는 바'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지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위를 가지고 지배하고자 하는 현재의 상황이 불편할 따름입니다. 지위만 중하게 여기면 결코 그 하고자 하는 바가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지위는 사람을 겉으로 복종시킬 수 있지만 더불어 일을 이루어나갈 수는 없으니까요.
최근 리더십과 관련된 책들이 넘쳐납니다. 그런 종류의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진 않지만 책에서 말하는 리더는 대부분 지위로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니까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하고자 하는 바'를 배우고 이뤄나가는 기초역량을 만드는 과정이 인문학입니다. 기관이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인문학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나무를 심은 엘지아 부피에, 그것을 콘텐츠로 만든 프레데릭 벡은 모두 이 시대의 리더입니다. 조직이 존재하면 권위도 존재합니다. 권위가 없는 조직은 쉽게 무너집니다. 하지만 지위만으로 만든 권위는 그보다 더 빨리 조직을 와해시킵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면의 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외부를 지위로 포장하니까요.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엘지아 부피에를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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