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빛날 빈(彬)

요즘 학생들의 이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한자는 아마 빛날 '빈'(彬) 자일 것이다. 이 글자는 중성적인 느낌이 있어 남녀 구분 없이 쓸 수 있고, 어떤 글자와 조합이 되어도 아주 잘 어울린다. 한글 이름처럼 어릴 때는 어울리지만, 나이가 들면 어울리지 않게 되는 그런 일도 없다. 그리고 '빛나다'라는 의미까지 좋으니 이름에 사용하는 글자로는 이만한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빈'(彬)이 가진 '빛나다'라는 의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물체가 빛을 내거나 반사해서 빛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이름에 '빈'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빈'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의미를 담고 있으니 필히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기를 바란다.) '빈'(彬)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골고루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인품이 빛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사람들이 '빈'(彬)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논어』(論語)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논어(論語)의 '옹야'(雍也)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자왈,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질(質)이 문(文)보다 크면 야(野)가 되고, 문(文)이 질(質)보다 크면 사(史)가 된다. 문(文)과 질(質)이 빈빈(彬彬)한 연후에 군자가 될 수 있느니라.

여기에서 '문'(文)은 처음에는 '무늬'(紋)를 뜻하는 것이었는데, 점차 글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인문학'(人文學)이라는 것이 글을 공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의 무늬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늬가 너무 화려해지면 본바탕이 보이지 않게 되듯이 사람이 너무 문(文)에 치우치면, 예의

바르고 격식에는 맞지만 인간미가 없을 수도 있고, 아는 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현학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위에서 이야기하는 '사'(史)라고 하는 것은 글을 다루는 일만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매력이나 야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질'(質)은 꾸미지 않은 인간의 본바탕이나 타고난 개성, 소박함과 투박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질'(質)이 잘 발현되면 왠지 촌스럽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고, 소박한 멋이 있게 된다. 이를테면 대중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에 맞게 세련된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속에서도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삼시세끼' 같은 투박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이유도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문'(文)을 배우지 않고, '질'(質)만 있으면, 사람의 품격이 떨어지고 위에서 이야기한 '야'(野)라는 말 그대로 거칠고 야만적인 모습이 된다. 결국 '빈'(彬)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바탕과 무늬가 잘 조화를 이루어 인품이 빛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빈빈'(彬彬)함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학생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문'(文)과 '질'(質)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도 우리 교육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말이 지나치게 거칠어서 자신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어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철저하게 관리를 해 와서 어른들이 원하는 틀에 박힌 말을 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 머리맡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놀았고, 생고생을 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성장했던 기성세대들은 지금의 학생들보다 어쩌면 교육 환경이 나았다고도 할 수 있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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