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기불황에 '돈맥경화'…내수 진작으로 뚫는다

[긴급진단] 한국경제 디플레이션 막아라…명품 수선점 북적, 신상품 대신 리폼 인기

"남편이 결혼기념으로 사준 명품 가방을 10년째 사용하고 있어요. 헤질 대로 헤져 들고 다니기 부끄럽지만 새로 구매할 생각은 꿈도 못 꿉니다. 주머니 사정도 빠듯해서 그냥 수선해 쓰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대구 중구 A수선점 손님 강모 씨)

8일 찾은 대구 남구 대명동 한 명품 수선가게에는 구두부터 가방, 의류, 소파 등을 수선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선반에는 수선 제품을 담은 쇼핑백 20여 개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15년 넘게 명품 수선집을 운영해온 홍박사 명품수선점 홍성률 사장은 "올 들어 손님이 부쩍 늘어 수선하려면 한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집에 있던 명품을 고쳐서 쓰려는 심리가 큰 것 같다"고 했다.

수선집에 들른 이정미(39) 씨는 "솔직히 예전 같으면 새 가방을 샀을 텐데…. 가뜩이나 불황에다 물가도 비싸다 보니 고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나왔다"고 귀띔했다.

현대백화점 길목에 있는 보보스 명품 수선점도 고객들이 크게 늘었다. 3년 전 이곳에 문을 연 주인 유국진 씨는 "올 들어 손님이 20% 이상 증가했다. 수선뿐 아니라 낡은 명품을 고쳐 다시 쓰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수선 가격은 브랜드보다 작업 난이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정도에 따라 2, 3천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다양하다.

수선집이 북적거리는 대신 백화점 명품 매장은 된서리를 맞고 있다. 같은 날 찾은 지역의 한 백화점 명품 매장은 구경하는 손님조차 뚝 끊겨 침울한 분위기였다. 일부 손님들은 유리창 안에 진열된 가방을 훑어만 볼 뿐 '감히'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긴 경기불황이 명품 소비패턴마저 바꿔놓고 있다. 좀처럼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자 백화점 유명 명품 매장들의 매출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가 하면 중고 명품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조차 뚝 끊겨버렸다.

대구백화점은 최근 주요 명품 브랜드가 매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신 중저가형 명품은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백화점 황주동 홍보팀장은 "불황의 여파로 고가 상품의 판매는 줄어드는 대신 중저가형 명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서는 매장에 진열된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부쩍 늘었다. 진열 상품은 정상가보다 25~35% 할인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상품을 구매하는 대신 유행에 맞춰 옷을 고치는 '리폼'도 인기다. 동아백화점 의류 수선실에는 하루 평균 4, 5건의 리폼 관련 문의가 들어오며, 주말에는 10건이 넘는다. 롯데백화점도 명품 수선 의뢰 건수가 전년에 비해 많이 늘었다. 일주일에 한두 건씩 들어오던 것이 하루 걸러 한 건씩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백화점 수선실은 매장에서 구입한 옷의 치수가 맞지 않거나 옷이 상했을 때 수선하는 업무를 맡는 곳이지만 최근 들어 아예 옷을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주는 리폼 서비스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주로 유행이 지난 정장의류, 여성은 코트와 정장의류를 맡겨 최신 디자인으로 리폼한다. 리폼 비용은 3만~5만원 선이다.

구두 수선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헌 구두를 가져와 가죽을 손질하고 굽을 교체하는 고객이 계속 늘고 있으며, 올 들어 새 구두 바닥에 창을 하나 더 붙여 오래 신으려는 고객 수는 지난해 동기보다 무려 15% 정도 늘었다.

리필제품의 인기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리필제품이 커피와 세제 등 생활용품 위주였지만 최근 들어 화장품, 방향제, 문구류 등 그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제품은 일반제품보다 10~30% 정도 저렴한 것이 보통이다.

최창희 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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