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아들같은 의사, 주치의

의사들의 수가 10만 명이 넘어섰다. 길을 걷다 보면 교회의 십자가만큼이나 흔하게 보이는 것이 병'의원인 시대다. 주변에 아는 의사 하나쯤 있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부모들은 자녀를 의과대에 보내려고 하거나 의사 사위라도 보길 원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집안에 믿을 만한 의사 하나쯤 있는 게 든든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집안의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건강을 책임지며 언제라도 전화해서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의사,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항상 신뢰가 가고 병을 낫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든든한 의사를 누구나 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주치의 제도를 통해서다.

주치의(단골의사) 제도는 한 사람의 의사가 특정 지역사회의 일정한 수의 세대를 맡아 포괄적이고도 지속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포괄적인 의료'에는 병이 생겼을 때 치료해 주는 측면 뿐만 아니라 예방을 해주는 측면까지 포함한다. '지속적인 의료'는 병이 있을 때만 치료하는 일회적인 진료가 아니라, 건강할 때도 지속적으로 건강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어릴 때부터 시작해 성인이 돼서도 지속적인 의사-환자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적인 의미도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주치의는 그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병력과 가족력, 사회경제문화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사소한 습관이나 취미 등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된다. 환자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잘 형성된 의사-환자 관계는 그 자체로서 치료적인 효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 '의사가 약이다'라는 말처럼 자기의 건강문제를 속속들이 아는 의사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안심과 플라세보 효과를 얻게 된다.

'의사가 옆에 있다'는 것은 좋은 접근성을 의미하며 직접 진료뿐만 아니라 전화 상담이나 왕진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의료 서비스를 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국가적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볼 때도 비용 대비 효과적인 진료가 가능하게 해준다.

주치의 제도의 단점은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박탈된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러나 국가가 한 지역의 세대를 특정한 의사에게 주치의로 지정할지, 아니면 여러 의사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의사를 주치의로 선택하게 할지 등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치의 제도가 시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의 지원 부족과 의사들 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도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국민들의 주치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로 인해 정부가 이를 강력히 추진할 계기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친구 같은 의사, 아들, 사위 같은 의사, 바로 우리 가정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가 그런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요구할 때, 주치의 제도가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윤창호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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