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립운동가 권오설, 민족시인 이상화에 보낸 엽서 발견

항일운동 교류 소중한 자료, 조원경 나라얼 이사장 공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권오설이 1922년 고향인 안동에서 풍산학술강습소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할 당시 이상화에게 보낸 엽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엽서 앞면, 엽서 내용. 김진만 기자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권오설이 1922년 고향인 안동에서 풍산학술강습소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할 당시 이상화에게 보낸 엽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엽서 앞면, 엽서 내용. 김진만 기자

일제강점기 교육계몽'사회운동을 통해 항일운동을 하다 옥중에서 순국한 안동 출신의 권오설(1897~1930)이 대구의 대표적인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에게 보낸 엽서가 경산에서 발견됐다. 이 엽서는 1920년대 초반 두 사람이 교류를 통해 항일운동과 민족의식을 교감했다는 소중한 증거로 꼽힌다. 두 사람이 교류한 자취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엽서는 권오설이 광주에서 3'1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고향인 안동 가일마을로 귀향해 풍산학술강습소를 세우고 교장 겸 교사를 맡았던 시절 대구에 있던 이상화에게 보낸 것이다. 1922년(일제 연호 대정(大正) 11년) 4월 26일 자 소인이 찍혔다. 엽서에는 이상화의 근황을 궁금해하며 며칠 뒤 대구로 나갈 때 간절하게 보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엽서는 경산의 (사)나라얼연구소 조원경(58) 이사장이 소장 중이다. 조 이사장은 "권오설이 1920년대 초반 다른 지역의 동지들과 편지와 엽서를 주고받았지만 민족시인 이상화와도 교류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발간한 자료집 '권오설'(1'2권)에도 권오설이 부친과 동생, 다른 지역의 동지 등과 주고받은 편지와 엽서 등 250여 점이 있지만 이상화와 교류한 흔적은 없었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김희곤 관장(안동대 교수)은 "1922년은 권오설이 풍산학술강습회 설립 등을 통해 교육과 농민운동, 청년운동을 펼치던 시기"라며 "이상화와도 학술강습회 운영과 관련한 후원이나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과 관련해 민족의식을 함께 교감하고 나누는 사이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한편 권오설은 1919년 광주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가 6개월 후에 풀려났다. 그해 11월 고향에 돌아와 원흥학술강습소와 풍산학술강습소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하고, 안동청년회 집행위원, 일직면 금주회 회장, 풍산청년회'풍산소작인회 등을 조직해 소작쟁의를 하는 등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상경 이후에는 조선노동총연맹과 고려공산청년회, 조선공산당의 지도자로 6'10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옥중에서 순국했다. 2005년 3'1절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상화는 대구에서 3'1운동을 모의하다 발각돼 피신했다. 현진건, 박종화와 함께 '백조' 동인으로 1926년 민족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돌아오는가'를 발표했다.

경산 김진만 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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