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고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이 몸으로 어떻게 가족을 돌봐야 할지…."
박진석(49) 씨는 몇 년째 하루의 절반가량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앓아온 천식과 당뇨, 간경화에 이어 최근에는 망막부종과 신부전증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몸도 고통스럽지만 더 힘든 건 막막한 앞날이다. 그의 질병은 대부분 완치가 어려워 평생 병원을 오가야 하는데, 중학생 아들은 학업이며 진로 등 신경 써줘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게다가 박 씨와 그의 아들을 평생 돌봐준 팔순의 어머니는 유방암과 관절염 등으로 고생하다가 최근에는 치매 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아들은 커가고 어머니는 건강을 잃어가시는데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병원만 오가는 게 답답하죠. 낫는 병이라면 희망이라도 품고 살 텐데…."
◆젊은 시절 찾아온 천식과 당뇨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박 씨를 키워냈다. 고생한 어머니를 위해 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테리어업에 뛰어들었고, 작지만 자신의 업체도 운영하게 됐다. 학창 시절 레슬링 선수를 꿈꾸며 운동을 할 정도로 건강했던 그가 처음 얻었던 병은 천식. 건강한 20대였던 박 씨는 천식으로 인해 좋아하던 운동도 할 수 없고 체력 소모가 큰 힘든 일도 하지 못하게 됐다. 여기에 당뇨까지 겹치면서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은 좋은 약이 많지만 그때는 약을 먹어도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는 일이 잦았죠. 당뇨 판정을 받았을 때도 젊었으니깐 '관리 잘하면서 살면 된다'며 큰 걱정은 안 했었죠."
특유의 긍정적 성격으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며 아내를 만나 귀한 아들을 얻었고, 자그마한 집도 장만했다. 고생하신 어머니를 돌보며 아들 노릇까지 톡톡히 했던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10년 전 갑작스레 찾아왔다. 대박을 꿈꾸며 크게 투자했던 사업의 실패로 10여 년간 운영했던 인테리어 업체가 부도를 맞게 됐다. 수억원의 빚만 안게 된 박 씨는 설상가상 아내와 이혼까지 하게 됐다.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그는 심한 상실감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잃었죠.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어린 아들과 늙어가는 어머니가 눈에 밟혀 차마 그럴 순 없었어요."
박 씨의 어머니는 지병으로 일하지 못하는 아들을 대신해 시골 장터 이곳저곳을 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자신도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고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아들과 손자를 돌보는 게 우선인 어머니였다. 어머니를 일터로 보내야 했던 아들은 다시 일어나 보겠다며 애를 썼지만 무심하게도 그의 몸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간경화 진단까지 받게 되면서 아들은 어머니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평생 고생하셨는데 너무 죄송스럽죠. 호강을 시켜 드려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아픈 몸보다도 노모와 아들이 걱정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 어머니의 노령연금 등으로는 세 가족의 생활비와 박 씨의 병원비, 때때로 나가는 수술비 등을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없는 살림에 학원 한 번 제대로 보내주지 못했지만 아들은 착하게 자라줬다. 아빠를 닮아 운동을 좋아하고 성실한 성격이었다. 힘들지만 아들만 잘 자라준다면 크게 바랄 게 없었다.
그런 박 씨에게 또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약 1년 전,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앞이 캄캄했다. 커다란 글씨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아 겨우겨우 찾아간 병원에선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망막부종이란 진단을 내렸다. 문제는 눈만이 아니었다. 신장에도 이상이 생겨 검사를 받았더니 신부전증이었다. 평생 신장 투석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는 주저앉고 말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지나 싶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차라리 낫는 병이면 열심히 싸워서 이겨내야겠다는 의지라도 생기겠지만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병들뿐이라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왔을 때 아들이 눈물을 펑펑 쏟는 모습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일주일에 세 번 신장투석을 하고 나머지 날들은 망막부종과 당뇨, 간경화 등의 치료를 받기 위해 매일같이 병원을 찾으면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에는 막막한 미래 때문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중학교에 진학한 아들의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학원이라도 보내주고 싶지만 그럴 돈이 없어 걱정만 자꾸 늘어난다. 게다가 얼마 전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치매 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지금은 건망증 정도지만 치매가 심해지면 어머니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한숨만 나온다.
"몸이 멀쩡했으면 어머니도 아들도 거뜬히 돌보겠지만 매일 병원을 오가야 하는 몸이잖아요.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왔는데 앞으로는 사실 너무 막막해요. 걱정하는 것밖엔 아무것도 못하는 저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해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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