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중2 대한민국'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앞산은 삭도로 유명했다. 스무 살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산에 놀러 갔다가 삭도를 탄 적이 있다. 삭도를 타고 내려가던 내가 아래에서 삭도를 타고 올라오는 외국인과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어린' 나는 늘 해왔던 대로 눈에 힘을 주고 상대를 빤히 노려보았다. 상대가 인상을 구기면 바로 삿대질이라도 할 태세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외국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했다. 순간 눈에 힘을 주던 내 꼴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누구라도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 상대가 선배든 후배든, 연하든 연상이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버스 정류장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목례했다가 '나, 아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며칠 전 한국계 미국인 한 사람과 점심을 먹었다. 미국에서 살다 온 그는 한국에서 운전하기가 겁난다고 했다. 차로 변경이 가능한 선인데 '방향 지시등'을 켜면 뒤차가 속도를 더 올려 끼어들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교차로 신호등이 녹색에서 노랑으로 바뀌는 걸 보고 정차했는데, 뒤차가 경적을 울리며 '왜 갑자기 세우느냐, 사고 날 뻔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자동차가 교차로 근처에 이르면 속도를 줄여 혹여 신호가 노랑으로 바뀌면 바로 멈출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의 운전자들은 오히려 교차로 근처에 이르면 속도를 더 낸다는 거였다.

2014년 한국은 수출입액 1조982억달러로 세계 8위의 무역 대국이다. 지난해 말 발표한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센터(CEBR)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규모는 2014년 세계 14위였다. 보고서는 또 한국은 2019년 호주와 스페인을 제치고 12위, 2024년에는 캐나다, 이탈리아를 추월해 10위, 2030년에는 세계 8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9위), 러시아(10위)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야말로 몸집은 어른이 됐다. 그러나 행동양식은 '중2'와 닮았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뭘 보냐?'고 째려보고, 자신의 조그만 성취에 허풍을 치며 으스대고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에 망설임 없이 상욕을 쏟아낸다. 공공화장실에서 물을 콸콸 틀어놓고 양치를 하고, 화장지를 둘둘둘 있는 대로 뽑아서 손을 닦고, 앞차가 운전이 서툴러 헤매면 지체 없이 상욕을 쏟아낸다. 덩치는 어른인데, 행동과 생각은 얕고 시비 걸기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생인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아이는 세월을 따라 고교생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 '중2 대한민국'도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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