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범죄피해자 회복과정의 동반자 '경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치안 및 사법체계는 범죄자에 대한 검거와 처벌을 강조했지만, 최근 들어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피해자에게 법률적, 경제적, 심리적 측면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시도들이 증가하고 있다.

살인 등 강력범죄를 경험한 피해자들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 망연자실, 충격과 혼란, 가해자에 대한 분노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들을 경험한다. 또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건 이후에 '나는 무력하고 나약한 사람이야',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또는 '이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와 같은 신념이 형성되고, 그 영향으로 대인관계가 위축되기도 하고 위협적으로 지각한 대상이나 장소를 회피하기도 한다. 이처럼 트라우마를 경험한 직후(즉, 급성기)에는 무엇보다 피해자의 생존과 안전을 도모하고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급성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회복 및 치유 여부와 그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 및 재판 절차상, 피해자는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떠올리고 이를 진술해야 한다. 불가피하기는 하지만 불안하고 놀란 피해자에게는 이런 과정은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조사나 진술 과정에서 충격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다시 고통이 될 수 있고 사건을 재경험하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일선에서 피해자를 처음 만나는 경찰에게는 피해자의 심리상태와 욕구를 이해하고 따뜻하고 수용적으로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얼마 전, 경찰이 올해를 '피해자 보호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전담조직을 구성하여 경찰 단계의 차별화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찰청에는'피해자보호담당관실', 지방청에는 '피해자보호계(서울'경기경찰청) 또는 '피해자보호팀'(기타 지방청)이 신설되었고, 경찰서에는 '피해자전담경찰관'을 배치하였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의 주 임무는 사건접수 시부터 사후 회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피해자를 보호'지원하여 그들의 정상적인 생활 복귀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정책이라니 반갑고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점진적으로 보완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적절한 업무를 수행하게 하려면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그 영향, 심리적 개입 등에 대한 전문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다각적이고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올해 200여 명의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전국에 배치되었다고는 하나, 범죄사건 대비 피해자전담경찰관의 수를 고려하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고, 경찰만으로 피해자 보호'지원 업무를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기관, 병의원, 대학교, 상담센터 등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피해자의 초기 상태 및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 양상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사후관리를 해야 하며, 이러한 장기간의 추적 연구를 통해 피해자에게 개입하는 근거(evidence)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근거에 입각해서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앞당기는데 기여할 것이다.

아무쪼록 경찰이 피해자 초기대응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범인 잡는 경찰로서 뿐만 아니라 피해자 회복의 동반자로서 친근한 경찰로 자리매김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최윤경/계명대학교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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