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혁세의 소리와 울림]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수 살리려면

1956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경영학과. 행시 23회.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금융감독원장
1956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경영학과. 행시 23회.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금융감독원장

저성장'저물가 상황 최저임금 인상 요구

합리성 벗어난 포퓰리즘 성격 많이 짙어

경기'고용시장 감안 없이 급격한 인상땐

영세업체 경영 악화 서민경제에 되레 毒

최근 정치권과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극심한 소비 위축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시간당 5천580원 수준인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 소비 성향이 높은 서민의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경기도 살아난다는 논리다. 반면 경영자 단체인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는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폐업을 촉발시켜 서민의 일자리가 줄고 결국 서민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총은 올해 최저임금을 지난해 물가상승률 수준인 1.6%만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주장은 그 나름대로 논거가 있어 전문가가 아닌 일반국민으로서는 선뜻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면 먼저 몇 가지 쟁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의 현재 최저임금이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적정한 수준이냐 여부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연간 최저임금액은 1만2천38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회원국 중 14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등 한국보다 최저임금이 높은 나라들은 임금 총액에 상여금, 숙박비 등을 포함하고 있어 이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최저임금 순위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구매력 평가기준으로 환산하면 10위에 해당돼 미국(11위), 일본(12위)보다 높다.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을 나타내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43.3%로 18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한국의 최저임금 절대 수준은 낮지 않으나 상대 수준은 다소 낮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할 경우 예상되는 효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 수혜 대상은 음식점, 편의점 등에서 시급을 받는 청년 아르바이트생이나 주부, 아파트 경비 등 용역을 맡고 있는 장년'노년층, 그리고 영세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이나 취약계층이다. 하지만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업체 등 일부를 제외하면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상당수의 업체들은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 문을 닫거나 불법체류 외국인으로 대체하거나 인력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 영세업체에 종사하는 대다수 근로자는 그 일자리에서 밀려나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내수 침체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창업하는 숫자를 크게 앞지르면서 지난해 자영업자 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22%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아파트 단지에서조차 관리비 절감을 이유로 경비 직원들을 줄이거나 무인 경비시스템으로 전환한 사례에 비춰볼 때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일자리 감소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소비 촉진을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저임금법의 제정 취지에 맞느냐 여부다. 최저임금은 근무환경이 다른 모든 종류 근로자들의 최저 생계비를 반영한 일종의 임금 가이드라인이다. 물가상승률 등 근로자들의 생계비 변동요인이 기본적인 판단기준이 되어야 하고 이들을 고용하는 사용자의 수용 능력이나 고용시장의 경쟁 상황도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전'월세 가격 상승 등 생계비 인상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핵심물가 상승률이 1%대에 머무는 저성장'저물가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요구는 합리성을 벗어난 포퓰리즘적 성격이 짙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해소와 수차례의 금융위기로 심화된 소득 불균형을 완화하려면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이 필요하지만 경기나 고용시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급격한 인상은 영세업체 경영을 악화시켜 오히려 서민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

최근 소비위축은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이자 부담 상승과 전'월셋값 인상에 따른 주거비 상승, 저금리로 인한 가계의 금융소득 감소, 정치권의 반시장적인 규제로 인한 소비여유 계층인 대기업과 부자들의 소비심리 냉각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노후불안에 따른 소비기피 현상은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1990년대 일본의 불황형 소비침체를 연상케 한다. 이 밖에 대기업의 하청업체 쥐어짜기나 프랜차이즈 업체의 횡포 등도 저임금의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내수를 활성화하려면 임금 인상과 더불어 부문별 종합적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권혁세/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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