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은 사람에 대한 선입견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사는 나라나 도시, 동네에 따라 주는 것 없이 호감을 느끼게도 하고, 좋지 않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바람직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툭' 하고 저절로 마음속에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도 없다.
미국 베벌리힐스나 서울 강남에 산다고 하면 '아, 부자인가 보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강남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서울'에 산다는 말만 들어도 괜히 기가 죽기도 한다. 강원도란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를 동경부터 생긴다. 대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순수하고 깨끗한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란 인식 때문이다. 사실 가 보면 강원도라고 다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어느 빈국에 산다고 하면 조금 쉽게 보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대구는 어떤가. 마치 몰락한 양반 집안 보듯 하지 않는가. 한 땐 잘 나갔지만 지금은 별 내세울 거 없이 명맥만 유지하는 사대부가(家) 말이다. 이렇다 할 기업이나 일자리도 없고,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이 과거의 명성에 갇혀 고집과 자존심만 센 곳. 잊을 만하면 대형 사고가 터지는 불안하고 위험한 도시. 투박하고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고, 사고는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재미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 대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이런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사건'사고가 터져도 곧 잊히는데, 대구에서만 터지면 부각되고 각인된다. '역시'라는 말과 함께 '사고', '고담', '꼴통'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탓이다. 하나 둘 안 좋은 일이 생기다 보면 인식이 나빠지고, 기가 꺾이고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그래서 정말 그런 도시가 돼 버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선순환도 반복된다. 하나 둘 잘 되다 보면 좋은 일이 연이어 생기고 어려운 일들도 풀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왜?'라는 생각은 의지를 불태우게 하고, 힘을 내게 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와 행동은 일을 되게끔 하고, 기와 자신감을 살려 '되는 법'을 알게 한다. 이기는 법을 체득하게 되면 이길 확률이 높듯, 되는 법을 알게 되면 일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요즘 대구가 꼭 그런 것 같다. 좋은 소식이 줄을 잇고, 숙원사업이 속속 해결되는 등 선순환 구조로 돌아선 것 같다. 남부권 신공항 사전타당성조사 용역을 위한 영남권 5개 시도의 대타협이 대구에서 성사되고, 창조경제혁신센터 업무협약(MOU)도 대구에서 제일 먼저 체결돼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 경북도청 이전터 매입과 관련, '도청이전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공들이던 제3 정부전산센터 입지도 최근 대구로 결정됐다.
부끄러웠던 아픔과 상처가 봉합되고, 대구 정신을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일기 시작했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발생 12년 만에 부상자, 유족 등 관련 단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안전문화재단이 설립되고, 기념식도 함께 열면서 아픔을 딛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또 대구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번진 국채보상운동, 2'28민주운동 정신을 대구의 정신,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신, 세계 보편적 정신으로 만드는 작업도 시작됐다. 대구시는 내년부터 이를 범시민운동으로 펼치기로 했다. 대구 정신 바로 세우기다. 간과하고 있지만 대구는 역사, 전통, 문화, 정신의 도시다. 예전에도 지금도 대구는 우리나라의 정신과 정치, 학문의 중심이다. 많은 지도자와 대통령이 대구에서 배출된 것도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거리다.
이젠 "대구에 사십니까"라는 부러움의 되물음을 듣고 싶다.
그러면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답하리라.
"예, 대구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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