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인속옷·초콜릿 사든 중년男 "화이트데이 이젠 챙겨야죠"

각종 '데이' 주요 고객층 부상…부인속옷도 떳떳이 골라 선물

"화이트데이도 이젠 챙겨야죠."

13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동성로 초콜릿 가게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47) 씨와 장모(49) 씨. 양복 차림에 머리가 희끗한 그들의 손에는 초콜릿이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김 씨는 "'내일이 화이트데이'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잠깐 짬을 내 사러 왔다. 이런 걸 잘 안 챙기면 와이프가 은근히 섭섭해한다"고 말했다. 장 씨도 "아내에게 초콜릿 선물을 주면 '돈 아깝게 왜 사왔냐'고 타박을 주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화이트데이 등 젊은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신(新) 중년들이 늘고 있다.

가족이나 결혼생활을 삶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중년층들이 늘면서 몇 년 전부터 화이트데이나 빼빼로데이 등 '~데이'가 되면 선물 구매 행렬에 동참하는 중년층이 많아진 것.

동성로 한 잡화점 점장 남명희(46) 씨는 "예전에는 50~60대가 오면 부끄러워하거나 들어오자마자 꼼꼼하게 따지지도 않고 선물을 바로 집어가곤 했다. 요즘엔 눈치 보지 않고 이것저것 물어가며 사가는 중장년층이 많다"고 말했다.

선물 품목도 다양하다. 사탕이나 초콜릿뿐 아니라 꽃이나 액세서리는 물론 속옷까지 챙기는 이들도 있다.

꽃집을 운영하는 안희숙(47) 씨는 "어떤 60대 한 분이 오더니 화이트데이 때 아내에게 줄 꽃이라며 프리지어를 10단이나 사가기도 했다. 젊은 남자들은 꽃을 사면서 '안 보이게 가방에 넣어서 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중장년층은 떳떳하게 사간다"고 말했다.

속옷도 화이트데이 선물로 인기다. 이지환(60) 씨는 "결혼기념일과 화이트데이가 겹쳐서 뭘 살까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줄 빨간색 속옷을 샀다"고 했다. 대백프라자 직원 김민지(23) 씨는 "속옷 매장에서 일한 지 4년이 됐는데 화이트데이 때 매장을 찾는 50~60대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노진철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중장년층이 특정일을 기념해 부인이나 자녀에게 줄 선물을 챙기는 것은 과거와 달리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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