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주·맥주·탄산음료파, 강요 없어" vs "첫 잔은 원샷, 봐주기도 없어"

대학가 술 문화 현재와 과거

11일 오후 7시 30분쯤 대구 북구 대현동의 한 식당에서 경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술자리를 가졌다. 이날 일부는 소주를 마시고, 술을 잘 못 마시는 학생들은 소주잔에 탄산음료를 채워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11일 오후 7시 30분쯤 대구 북구 대현동의 한 식당에서 경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술자리를 가졌다. 이날 일부는 소주를 마시고, 술을 잘 못 마시는 학생들은 소주잔에 탄산음료를 채워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대학가 요즘 술 문화를 들여다 보다

대학교 입학식이 있은 지 이틀 후인 4일 오후 11시쯤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 방면 2219호 칸. 지하철 오른쪽 열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 셋은 계명대학교 신입생. 왼쪽에 앉은 학생은 노란 비닐봉지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 옆으로 동기생 둘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학생은 불콰해진 얼굴로 지하철의 움직임에 따라 상체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가운데 앉은 학생은 한 손으론 비닐봉지와 물아일체가 된 동기의 등을 두드리면서 다른 한 손으론 주유소 홍보 풍선처럼 흔들리는 동기를 붙잡고 있었다.

3월, 대학가에서는 이달을 '술의 계절'이라 부른다. 어떤 선배는 새내기 때 40일을 내리 마셨다는 둥, 술 마시고 집에 가서 자다가 좀비처럼 다시 술 마시러 나왔다는 둥 어느 학교, 어느 학과든지 '3월의 전설'이 있기 마련이다. 기억 속 대학 새내기들은 이제 겨우 술맛을 본 20대 초입이기에 자신의 주량도 모르고 마시는 탓에 앞서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쉬이 절제하지 못하고 '전설'을 써내려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유독 2월 말과 3월 초 대학 새내기들이 술 마시다가 일어난 사고 소식이 잦았다.

그러나 요즘은 언론보도에서 이 같은 사고 소식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너무 만연한 일이라 더는 뉴스 가치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언론에 보도될 만한 사고가 없어서? 이것도 아니면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지 않아서? 궁금함을 해결코자 이번 주에는 대학생들 술자리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음주문화를 짚어봤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대학가 술 문화 오늘(2015년)과 30년 전(1985년)

◆2015년-술'자리'? 너와 나의 연결'고리'

2015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대학가 술 문화가 바뀌고 있다. 성급히 일반화할 순 없지만 대체로 '못 마셔도 함께 즐기자'는 방향이다. 11일 오후 7시 30분 경북대학교 정문 인근에 있는 한 깐풍기 가게를 찾았다. 이곳에서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학생회장과 신입생 31명이 모여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학과는 한때 '술방과'로 불릴 만큼 음주 문화가 흥했던 학과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느덧 '술방과'라는 별명은 사라져 버렸다.

불과 10년 전 05학번이 새내기일 때만 해도 소주 일색이었지만 이제는 소주파, 맥주파, 탄산음료파 등 세 부류로 나뉘었다. 지난 며칠간 술을 마셔본 뒤 주량에 자신이 있는 이들은 소주로 뭉쳤다. 컨디션이 온전치 않거나 술이 세지 않은 이들은 맥주를 마셨다. 또 술을 하지 않는 신입생들은 탄산음료를 마시며 술자리 분위기에 취했다. 이 학과 신입생 김가영(19) 씨가 여자 동기 셋과 둘러앉은 자리에는 빈 소주병이 2병 있었지만, 탄산음료 빈 병은 이보다 많은 3병이었다.

김 씨는 "교회를 다녀서 술 대신 탄산음료를 마신다. 대학 입학 전에는 술자리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입학하니 선배들이 '술 안 마셔도 같이 어울리면 된다'며 술을 강요하지 않더라. 여자라서 배려해 주는 건가 싶었는데 남자 동기들도 '술 못 마신다'고 하면 선배들이 억지로 권하지 않더라"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3월 여느 대학가 술집에서 볼 수 있었던 술자리 게임이 사라졌다. 마치 서구의 파티 문화처럼 자연스레 자리를 옮겨다니며 대화를 나눴다. 조금 친밀해진 사이에서는 옷차림 지적이나 겉늙어 보인다는 외모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학과와 강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나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이렇게 1차를 즐긴 이들 대부분은 2차까지 함께한다. 부담없이 2차에 응할 수 있는 것도 술 안 마시는 자리로 이어지기 때문. 1차에서 달아오른 흥은 2차 노래방에서 절정에 달한다. 노래방에서 나오면 시간은 오후 10시에서 11시 사이. 막차가 끊기기 전 자리를 파한다.

김대식(19) 씨는 "호프집보다는 감자탕 가게 등 식당에서 식사와 함께 간단히 술을 마신다. 여학우가 많아서인지 이야기하면서 자유롭게 분위기를 즐긴다. 아무래도 게임을 하게 되면 벌칙주를 마셔야 하니까 술을 못하는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도 있다. MT를 가면 술자리 게임을 할 때도 있다고 선배들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가 술 문화가 변한 데는 최근 SNS 발달로 인한 대학 내 악습 폭로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한림(24) 신문방송학과 학생회장은 "지난해 안전 문제가 주요 이슈로 대두한 만큼 사고를 미리 방지하고, 술을 잘 마시든 못 마시든 함께 즐기는 데 의의를 두자는 쪽으로 학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또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면 온라인 상에 폭로되기도 한다. 결국은 학교와 학과 이미지가 나빠지고, 구성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 일부러 더 조심하기도 한다"고 했다.

◆1985년-'술=낭만'

30년 전은 어땠을까? 85학번이 이 학과 신입생이었던 시절은 막걸리가 대세였다. 술 마시는 곳도 식당이나 술집이 아닌 학교 안 잔디밭. 가끔 주머니에 돈이 있는 날이나 지도교수가 술 사줄 때에야 겨우 분식집에서 라면이나 쥐포에 소주를 마셨다. 또 첫 잔은 다 같이 '원샷'으로 마셔야만 했다. 술 못 마신다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당시는 과외교습도 금지였고 지금처럼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대학생 주머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제대로 된 곳에서 소주나 맥주를 마실 일이 없었다.

이강형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같은 학과 85학번)는 "일주일에 5, 6일은 잔디밭에 앉아 우동 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마셨고 안주는 주로 새우깡이었다. 그때만 해도 술 마시는 것을 대학시절의 낭만이라 여기며 겉멋 부리는 측면도 있었다"고 반추했다.

이때만 해도 여성이 술 마시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도 했다. 1985년 5월 17일 금요일. 이 교수와 동기들은 경주 황성공원으로 야유회를 떠났다. 동기들과 함께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가며 남학생들은 술을, 여학생들은 탄산음료를 마셨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나들이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걸리 한 사발을 벌컥 들이켰다. 남학생들은 순간 놀랐고, 이내 "쟤 좀 이상한 것 같다"며 수군댔다.

이 교수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땐 남자들끼리 술을 마셨다. 심지어 남자 선배 한 명은 여자 후배가 술 마시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호되게 꾸짖기도 했다. 여학생들과 술 마시는 일은 신입생 환영회, 페스티벌 때가 전부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15학번이 술자리에서 학교생활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85학번은 취업 고민이 없던 시절이니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시국에 대한 고민과 '아침이슬'과 같은 민중가요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당시 술자리에서는 게임을 한 적도 없다.

이 교수는 "그때 우리는 대학생이 술 마시면 당연히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게다가 1985년에 학도호국단이 없어지고 처음으로 총학생회가 출범하면서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많았다. 시위에 나가기 전 술 한잔 걸치고, 시위를 마치고는 최루탄과 먼지를 씻어낸다고 술을 마셨다"고 했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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