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세 시대 종말·가계부실 가속…월세 부담 세입자 빚내 집 구입

美 금리 인상땐 하우스푸어로

대구 달서구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이인숙(37)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학원 한 곳과 우유를 끊었다. 집주인이 전세 재계약을 한 달여 앞두고 반전세로 계약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반전세 아니면 방을 빼라는데 이사를 가려 해도 다른 전세 매물이 없다. 남편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매월 방값을 내려면 씀씀이를 더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출을 끼고 아예 집을 사버릴까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저금리 시대에 '전세의 종말'이 가속화되면서 주택시장이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한국 주택시장은 전세를 기조로 움직여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전세의 반전세 및 월세 전환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의 급격한 월세 전환은 가계부채 비율을 높이고, 주거비 상승을 부추겨 결국 가계 부실을 초래하는 등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감정원이 지난해 12월 실거래가 정보를 분석한 결과 대구의 전'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이율)은 전국 평균 7.7%보다 높은 연 8.7%로 2%대 수준인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의 4배를 웃돈다. 이 비율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전세에 비해 월세 부담이 높다는 의미다. 결국 집 없는 월세입자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월세 물량이 늘면 전환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감정원 변성렬 실장은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1년 대비 전'월세 전환율은 꾸준히 하락세다. 이는 전세에서 월세로 주거형태를 바꾸는 집주인이 늘면서 월셋값이 떨어진다는 뜻"이라고 했다.

빠른 월세화의 부작용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측된다. 전세가 속속 월세로 바뀌면서 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되지만 여전히 세입자들은 전세를 선호한다. 결국 전셋값이 더 오르게 되고, 월세를 꺼리는 세입자는 빚을 내서 집을 사게 되며, 자칫 미국 금리 인상 등 외적 영향 탓에 순식간에 하우스푸어가 양산될 수도 있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 연구위원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금이 보전되는 전세 제도는 세입자에게 '무이자 예금'이었다"며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월세는 세입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급격한 전'월세 전환은 주택시장의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센터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고, 국내 경제가 글로벌 경기에 민감함을 명심해야 한다"며 "월세를 꺼리는 수요자가 단순히 저금리에 유혹돼 금융권 대출을 받기보다는 실거주 위주로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상준 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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