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세기 중엽 포에니전쟁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로마는 더 많은 영토를 가지고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귀족층의 대농장(라티푼디움) 운영이 자영농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소작농과 노예를 양산하면서 사회적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호민관인 그라쿠스 형제가 이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나섰다. 이른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다.
하지만 토지개혁을 통해 자영농을 육성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하고 만다. 벌족파의 반발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개혁의 좌절은 경제와 국방의 근간인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지며 후일 로마가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 상앙은 '변법'(變法)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의 진수를 보여줬다. 상앙의 변법은 단순한 법령의 개변이 아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통틀은 일대 혁신이었다. 상앙 역시 그라쿠스 형제처럼 반대파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그가 제시한 변법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변방의 작은 나라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며 진시황의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위기 상황에 봉착한 송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왕안석의 신법'이다. 이 또한 대지주와 대상인의 횡포로부터 중소 농민과 상인들을 보호'육성함으로써 부국강병을 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이 왕안석의 신법당에 대응하는 구법당을 결성하면서 뿌리깊은 당쟁으로 변질되었다. 정치적인 거물들이 포진한 구법당에 비해 신법당에는 왕안석의 정신과 식견을 이을만한 재목이 없었다. 왕안석이 퇴장하고 개혁의 이념이 퇴색하자 신법은 오히려 백성을 수탈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사회적인 모순의 심화는 결국 민중의 반란을 부르고, 북송 왕조는 내우외환에 휩싸인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개혁을 위한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다. 14세기 후반 반원(反元) 자주정책과 왕권의 강화로 민생의 회복을 도모하던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권문세족의 반발로 무산된다. 개혁의 실패는 역성혁명의 씨앗을 키우며 고려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조선 후기 개혁군주인 정조의 요절은 조선왕조가 근대국가로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이른바 '조선의 르네상스'가 물거품이 되면서 조선은 노론 벽파의 일당독재와 세도정치로 말기적 병증을 키워갔다. 흥선대원군이 개혁의 칼을 뽑았을 때 조선은 이미 회생이 어려운 중증환자로 외세에 저항력을 상실한 채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역사는 웅변한다. 개혁이란 때를 놓치면 안으로 혁명을 잉태하면서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을 부른다는 것을. 적시성을 놓친 개혁은 그렇게 공멸과 파국이라는 불치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역사상 숱한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당연히 수구 기득권층의 방해와 저항이다.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개혁을 추구하는 주체의 진정성이다. 개혁이 정치성을 띠면 타협의 산물이 되어 그 취지와 정신을 상실한다. 그런데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 개혁은 거센 반발에 밀려 실패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개혁의 아이러니이다.
집권 3년 차를 맞은 박근혜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을 선포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과업'이라며, 정부의 모든 역량과 권한과 수단을 총동원해 고질적 적폐와 비리를 철저히 규명해 엄벌하겠다고 벼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벌써 신'구정권 간의 갈등설을 제시한다. 개혁의 정치성 논란이다.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을 획기적인 법안인 '김영란법'은 통과되자마자 위헌성 논란에 휩싸이며 여전히 시끄럽다.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도 시대적인 과제로 남아있다. 왕안석은 "변화와 개혁은 아무리 해도 모자란다"고 했다. 그래서 개혁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개혁 주체의 진정성과 국민의 신뢰성은 개혁의 성패를 결정하는 함수관계를 지니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병증과 개혁의 현주소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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