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예능·드라마·영화 등 셰프들 인기
지구촌 누비며 푸드 콘서트 투어 하기도
예술적 퍼포먼스·작품 등 박수받는 요리
허기 채우기 급급했던 세대에겐 낯설어
유럽 사람들은 행복한 삶의 조건 중 4명의 친구가 있었으면 한단다.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에 대해 언제나 상담할 수 있는 의사 친구, 법적인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법에 종사하는 벗, 그리고 희로애락의 엔터테이너가 있으면 유쾌하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친구가 셰프라고 한다.
요즘은 가히 셰프의 전성시대다. 부자나라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우리도 무슨 세끼 하는 식의 요리 프로그램들이 인기여서 먹방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다큐멘터리에서 예능프로, TV드라마는 물론 영화의 주인공도 인기있는 캐릭터가 셰프다. 국제적인 찬사를 받는 명사 셰프들은 마치 왕년의 롤링 스톤즈나 퀸(Queen) 그룹, 이글스 멤버들이 음악으로 세계 순회공연을 하는 것처럼 지구를 누비며 푸드 콘서트 투어를 하는 세상이다.
지난 1월 일본 도쿄에서 월드베스트 셰프로 칭송받는 노마 레스토랑의 레네 레드제피(Rene Red zepi)의 푸드 콘서트 티켓이 40여만원이었는데도 만석이었다고 현장에 다녀온 명문가 요리 선생님 최경숙 원장이 말했다. '비싸네'라고 생각되는데, 우리나라 모 호텔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있었는데 60만~70만원이었고, 빈자리도 없었다고 한다.
서양에 주방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은 150년이 안 된다고 한다. 먹을거리도 그렇다. 반 고흐의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 작)에서 보는 것처럼 낮은 계층이었던 농민, 광부, 방직공장 직공들의 주된 먹거리는 감자였다. 칼로리, 미식, 식도락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고 오로지 배고픔만 면하게 해주던 감자에서 벗어난 것도 120여 년밖에 안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셰프도 왕족이나 귀족들만의 주방장에서 영국의 산업혁명 후 일반 백성들도 상업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대중귀족화 사회가 되면서 좀 나은 대우를 받는 직종이 되었던 것이다.
저명인사가 된 셰프들에겐 에피소드도 많다. 베를린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제리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모처럼 엄마가 도시락을 싸줘 신이 났는데, 학교 선배들에게 빼앗겼다. 불 같은 그는 복수를 다짐했다. 한참 후 엄마가 준 도시락을 갖고 화장실로 갔다. 빵의 가운데를 가르고 제 변을 버터 바르듯 했다. 선배들이 도시락을 내놓으라고 하자 그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오늘만큼은 절대 안 돼!"
그 후 다시는 도시락을 뺏기지 않았다.
그는 매너 없는 손님이 오면 "당신이 주문한 음식에 내가 독약을 넣을지도 몰라 그러니 당장 꺼지라"고 한다나. 그럼에도 레스토랑은 예약이 쉽지 않다. 배고픔이 그를 최고의 셰프로 탄생시켰고,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응어리가 개성 강한 매력남으로 그만의 이미지가 되었다.
가장 큰 서러움이 배고픔이라 허기 채우기에 급급했던 나 같은 세대에겐 요리 만들기가 예술적 퍼포먼스이고 음식이 작품으로 박수받는 시대적 변화가 흥미로우면서도 낯설다. 중학생 때였다. 가장인 나는 일을 마치고 일당을 받으면 꼭 두 가지를 사야 했다. 한 봉지의 쌀과 두 덩이의 연탄이었다. 쌀보다는 싼 밀가루를 더 자주 샀다. 수제비를 빚을 때 동생과 나는 의식(?)이 있었다. 3개는 큼직하고 두텁게 만들었다. 수제비라고 배부르게 먹을 처지는 아니어서 맨 마지막 것은 크게 빚었다. 두툼하니까 씹는 느낌도 다르고 뭔가 수제비를 많이 먹는 것 같은 환상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말이 생각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트럭운전 생활을 한 가난뱅이 청년이었다. 그러나 로큰롤의 황제가 되어서도 못살았던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사랑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전부리나 음식은 가난했을 때 즐겨 먹었던 도넛, 스낵, 캔디였다. 그런 것을 소울 푸드라고 하는데 난 지금도 수제비가 참 맛있다. 늘 더 먹고 싶었지만 한 그릇뿐이어서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어머니야말로 최고의 셰프다. 엄마의 손만 거치면 뭐든 맛있어졌다. 먹을 거 더 없나 하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두 자식을 보며 어머니는 언제나 계면쩍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중얼거리셨다.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더니 오늘도 참 잘 먹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그럼 고맙고말고…."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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