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엘리제궁의 요리사

실재 미테랑 요리사 실화 바탕…'요리'아닌 '사람 관계' 이야기

#佛 대통령이 반한 시골 홈쿠킹

#졸지에 엘리제궁 입성한 여성

#소박한 밥상 인기 올라갈수록

#원래 주방장과 관계 애매해져

먹방 리얼TV, 특급 요리사의 레시피, 연예인의 밥 해먹기 프로그램 등 잘 먹고 건강하게 살기, 슬로 라이프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이 드높다. 이러한 열풍 가운데 최근 요리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조용히 흥행하고 있다. 이번 주에도 또 한 편의 요리영화가 개봉한다.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1990년대 프랑스에서 미테랑 대통령의 개인 요리사로 2년간 활동했던 실재 인물의 자전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대통령과 궁, 그리고 요리의 조합을 생각하면, 화려한 접시에 등장하는 각종의 정통 프랑스 요리, 원칙에 따라 절도 있게 움직이는 주방의 활약상,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 맛있게 먹는 게스트들을 상상하기 쉽지만, 영화는 상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요리영화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꺼려질 정도로 음식을 하고 먹는 장면은 그다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한 평범한 여성이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리사들 사이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이야기,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년여인 라보리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에서 송로버섯 농장을 운영한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대통령의 개인 셰프를 제의 받고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 입성하게 된다. 격식을 차린 정통요리 위주였던 엘리제궁에서 대통령이 진짜로 원하는 음식은 프랑스의 따뜻한 홈쿠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을수록 수십 년간 엘리제궁의 음식을 전담했던 주방장의 원성은 높아만 가고, 주변의 불편한 시선으로 인해 라보리는 대통령 개인 셰프 자리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레지스탕스 출신이며 사회당 당수로서 대통령에 오른 자, 프랑스 역대 최장기 기록인 14년 재임 기록을 가진 노인 미테랑의 인간적인 면과 소박한 취향에 오히려 눈길이 간다. 심각한 병을 앓던 대통령이 할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그녀는 병든 그에게 혀의 감각을 되살려주는 것으로 추억을 선사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업무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주방의 곱지 않은 시선에 속에서 라보리는 회의를 느끼지만, 그녀는 절대로 주눅이 들지 않는다.

영화는 엘리제궁을 떠난 후 남극에서 셰프로 활동하는 그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엘리제궁 주방과 남극의 주방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자유분방한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것과 엄격한 격식 속에서 진행되는 궁의 주방 활동이 대조적이다. 왁자지껄하게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장면과 굳게 닫힌 문 뒤에서 대통령의 평가를 기다리는 장면이 비교되며, 음식을 하는 것은 나눔의 순간임을 상기시킨다.

빠른 편집으로 소상히 전개되며 요리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많지 않다. 눈과 귀를 사로잡을 완성된 음식 접시와 요란을 떨며 칭찬해대는 품평의 과정도 없다. 유쾌하고 힘찬 요리 영화가 아니라 생각에 잠기게 하는 고요한 명상 같은 영화다.

빛이 밝게 비추는 엘리제궁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바쁘고 딱딱하며 치열한 경쟁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 매서운 바람과 잔뜩 어두운 남극이지만 그곳의 여행자들은 격식이 없고 활기차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궁의 모습과 여유롭고 자유분방한 남극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결국 요리는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연어로 속을 채운 양배추, 송아지와 돼지 살코기로 층을 쌓아 만든 오로르의 베개, 과일과 피스타치오 누가틴을 얹은 크림 타르트 등 듣도 보도 못한 프랑스 정통 요리들이 나열된다. 낯선 명칭의 음식의 향연은 진기한 것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당한 여성 라보리의 편안한 얼굴을 보는 것이 영화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대통령의 평범한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 때문에 힘들죠? 나도 그래요." 평범하고 소박한 말이 지친 마음을 달래듯이, 소박하고 평범한 음식이야말로 영혼을 달래주는 최고의 치유제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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