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

"색깔 있는 팬티 못 만든다던 北, 이젠 패션·디자인도 이해"

홍양호(59) 전 통일부 차관은 30년간 통일 관련 부처와 기관에서만 일해 온 통일 전문가다.

대구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행정고시 뒤 부산 해운항만청에 잠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공직생활 대부분을 통일부에서 보냈다. 남북 관계와 통일에 대한 관심으로 1983년 국토통일원에 지원할 때만 해도 고시 출신 대다수가 외면했지만,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 이후 통일부처에 대한 관심과 역할이 크게 확대됐다.

홍 전 차관은 통일부를 떠난 이듬해인 2011년 10월부터 3년 동안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장 및 지원재단 이사장을 맡아 개성공단을 총괄했다. 개성공단의 역할과 향후 발전 방안, 통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개성공단은 어떻게 운영되나.

▶남한이 자본과 기술을, 북한이 근로자와 토지를 제공해 2004년 초 착공, 그해 말 '통일냄비' 등 첫 제품을 생산해 신세계백화점에 납품했다. 군사지역인 허허벌판 땅을 정비하고 인프라를 갖춰 15개 업체 시범단지로 출발해 현재 123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한국 법인인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과 북한법에 의해 만든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우리가 관리하고 있다. 재단 총 70명 중 50명이 관리위원회에 파견돼 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은.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처음엔 오해와 갈등이 종종 빚어졌다. 우리말로 괜찮다는 뜻의 '일 없어요', 부족하다는 뜻의 '(전력이) 긴장되다', 상대방이란 뜻의 '대방' 등 의미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북한 근로자에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해 주거나 친근하게 대하면 당사자가 '남쪽과 가깝다'는 오해를 받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측은 또 처음엔 색조가 다양한 남성 팬티를 못 만들겠다고 했다. '자본주의 황색 바람에 물들 수 있다'는 이유였다. 완성된 청바지를 찢고, 색깔을 바래는 것도 어리둥절하게 여겼다. 이젠 패션 등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직접 디자인을 하기도 한다.

-가장 큰 위기는.

▶2013년 4월 3일 북측 관계자가 서울에서 올라오는 차량과 사람은 일절 출입이 안 된다고 통보해왔다. 이유는 '정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 박근혜정부 초기 키리졸브 훈련 등을 핑계로 내세워 우리를 압박했다, 1주일 뒤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가 개성에 왔기에 분위기가 바뀌려나 기대했지만, 정반대였다. 북측 책임자는 그날 "정세에 대해 왜 그렇게 모르느냐. 오늘 이 시간부터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전원(5만여 명)을 철수시킨다"고 한 직후 실제 철수해버렸다. 그날부터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됐다.

우리 기업인들도 모두 나가고 일부만 남은 상태에서 북측은 조건을 내걸어 철수에 제동을 걸었다. 체불임금과 세금 등을 해결하기 전에는 관리자 일부는 개성공단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통신을 위해 KT 직원 2명과 관리위원회 5명 등 7명이 최종적으로 남아 협상을 벌였다. 5월 3일까지 마지막으로 남은 개성공단 '최후의 7인'이었다.

이후 ▷출입제한 등 정세 영향 배제 ▷남북공동위원회 구성 ▷3통(通) 개선 ▷국제화 등에 대한 서면 합의를 한 뒤 북 근로자 철수 6개월여 만에 개성공단은 재개방됐다.

-개성공단이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섬유'봉제, 신발 등 국내 경쟁력이 약화됐던 업체들이 개성공단에 진출하면서 국내 내수시장 활성화가 이뤄졌다. 123개 기업에 불과하지만, 국내 관련 협력업체는 5천~6천 개나 된다. 일자리 5만~6만 개를 만들었고, 연관산업 등을 감안하면 25만~30만 명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특히 부산 신발업체 5, 6개는 설비를 폐기처분하려다 고스란히 북한에 가져가 살아났고, 한 의료용 신발업체의 경우 3천 명을 고용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 후 2개월 만에 대구 섬유원단 등 원자재 수요가 크게 떨어져 업체들이 산업통상자원부에 공단 문을 빨리 열어달라고 할 정도였다. 특히 2010년 5'24조치로 신규투자, 대북 지원 등이 막히는 바람에 개성공단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파급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개성공단은 대북정책에서 최상의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방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 프로젝트로, 경제적으로 윈윈하고 있다. 특히 당초 북한 군의 요충지를 비군사지역으로 만듦으로써 평화라인을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북측이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클레임이 걸린다는 것을 아는 등 제품의 질과 납기일, 신용 등 시장경제의 원리를 알게 됐고, 상호 간 공유의식도 생겼다. 국제사회도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관계를 새롭게 보면서 남북한 긴장 완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전 인적'물적교류는 활발히 했지만, 개성공단처럼 동독 내 서독기업이 가동된 적은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은 개성공단을 '창의적 교류'라고 표현한다.

-남북관계의 걸림돌과 해결책은.

▶현재 남북관계 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천안함 폭침으로 취해진 5'24조치이다. 현 정부도 고민 중인데, 일단 만나서 얘기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과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은 통일의식을 제고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제천시가 북한과 교류해 '제천 사과나무'를 심고, 경상남도가 통일 관련 단체를 통해 딸기 종자를 북한에 보내 생산하는 것처럼 민간 차원의 교류도 중요하다.

김병구 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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