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사랑의 꽃씨를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랍니다. 사랑이 아닌 상태는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심을 갖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요? 관심(關心)이란 한자 그대로 마음과 관련되는 것인데, 어떤 사람이나 사물 및 사건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라틴어로 관심은 꾸라(cura)인데 그 뜻은 관심 외에도 돌봄, 조심, 배려, 치료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심이란 마음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그들을 배려하고 돌보고 치료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무관심(無關心)은 글자 그대로 마음과 관련이 없다는 뜻입니다. 라틴어로는 인디페렌시아(indifferentia)인데, 부정을 뜻하는 in이란 말과 다름, 차이, 차별을 뜻하는 diffenrentia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래서 무관심이란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사건에 대하여 어떠한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뜻합니다. 그로 인해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닌 중립적인 공평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냉담한 태도를 뜻합니다. 그렇기에 무관심이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사건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그저 그런 것, 의미 없는 것으로 지나쳐가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곧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되어 주변의 모든 것에 마음을 닫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에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도대체 사랑의 싹이 돋아날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관심은 사랑과는 반대되는 것이지요.

현대 사회가 물질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세상 삶에서 삭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과 세상의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 무관심의 바다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자신의 삶에만 파묻혀 살기에 나와 관계없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으며, 각종 세상의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에서 일어난 일에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이, 우리의 이웃이, 지구촌의 벗들이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어도 그저 내 삶만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삶으로 인하여 우리는 세상을 너무나 삭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모습을 직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올 사순시기 담화에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극복하고 하느님과 이웃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우린 세상을 살면서 자신에게 집착한 나머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우리 모두를 기억하시며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하여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하느님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나의 삶, 나의 행복, 나의 기쁨, 나의 일, 나의 가족 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만 마음을 가졌던 삶은 바로 무관심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에서 당연히 우리의 이웃은 나의 삶에 끼어들 기회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 없이 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과 세상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돌아봅시다. 우리의 이웃은 또 다른 나입니다. 그렇기에 이웃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해주고, 그들의 삶에 우리의 마음을 담은 눈길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을 감싸안는 것이 바로 관심입니다. 이 관심에서 사랑의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인간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꽃씨는 관심입니다. 이 봄에 사랑의 꽃씨를 뿌리기 위해 우리의 눈을 주위로 돌려 봅시다.

김명현 대구 비산성당 주임신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