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에 딱 좋은 나인데…."
20일 오후 3시 대구 동구 동촌제일유치원 내 교실. 10여 명의 유치원생이 칠판에 붙어 있는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이라는 한자성어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고 있었다.
올해 90세의 이영호 옹은 칠판 옆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낸다.
이 옹은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이렇게 잘 아는 유치원생은 내 제자밖에 없을 거야. 참 뿌듯해"라며 미소 지었다.
이 옹은 이 유치원에서 12년째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교감과 교장, 장학관 등 교육계에서 정년을 마친 이 옹은 십수 년 전부터 복지관과 학교 등을 돌며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12년 전 김한경 동촌제일유치원장의 권유로 처음 유치원 강의를 나왔다. "어린 나이부터 한자를 배우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고 한자성어를 통한 인성교육도 가능하지. 누구보다 이 아이들에게 한자교육이 필요한 거야."
비슷한 연배의 노인들이 몸이 아파 병원에 있거나 세상을 떠났지만 이 옹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하다.
일주일에 세 차례 직접 지하철을 이용해 유치원을 찾는다. 하루 2, 3시간씩 수업을 하는 데도 힘들어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옹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12년간 5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중 170여 명은 한자자격증도 취득했다. 중'고등학생이 된 제자들은 한자 공부를 이어가면서 더 높은 급수의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학부모들까지 자격증을 따고 있다. "꾸준히 사회활동을 하면서 생기 있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게 건강 비결이라오."
이 옹처럼 최근 자신의 재능을 살려 사회활동을 하려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대구시는 사회활동을 원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월 30~35시간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20만원의 지원비를 받는 노인이 지역에 총 1만4천여 명이나 된다.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도 길거리 미화활동이나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 등에 참여하는 어르신들도 많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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