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비슬산 유가사 주지 스님이 경내의 흰진달래를 누군가 훔쳐갔다고 말했다. 당시 흰진달래가 자생한다는 암시로 받아들였던 나는 여러 번 헤맸지만, 그 너른 산천에서 어디쯤 자생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늘 허탕만 쳤다. 흰진달래 찾기에 끈을 놓지 않았던 나는 임업시험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이런 생각을 가졌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생태를 복원하고 있는 지금의 대구수목원에서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세계적인 희귀종을 보여주리라.
비슬산의 진달래 개화 시기는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3월 말부터 약 한 달 정도 걸린다. 그러니까 산 중턱의 진달래는 4월 중순에 만개한다. 비슬산참꽃축제를 창안하면서 수년간 진달래 개화시기를 관찰한 결과다. 비슬산참꽃축제도 성공시켰고, 전국적인 명산으로 급부상시킨 만큼 자부심이 무척 강했던 나는 2003년 4월 10일 또다시 흰진달래 자생지 찾기에 나섰다.
그날은 내산 쪽에서 올라갔다. 하필이면 진달래꽃이 뚝뚝 떨어졌다. 미상불 하루 전에 내린 비가 낙화를 더욱 부추겨서 그랬다. 능선을 오르내리고 앞으로 또 옆으로 수없이 헤맸고, 주변을 주도면밀하게 뒤지고 살폈다. 비 온 뒷날 4월의 햇볕은 무척 따갑고 무더웠다. 전신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허기진 상태에서 결국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산 길로 접어들어 한참 내려오는데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처럼 오를 때 보지 못한 그 꽃이 눈에 띄었다. 딱 한 그루에 흰 꽃 하나만 달랑 붙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흰진달래다!"고 고함을 질렀다.
비슬산 중턱에서 막바지 하얀 꽃으로 자리한 세계적인 희귀변이종 흰진달래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리저리 휘젓고 다녀 얼굴까지 나뭇가지에 엄청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흰진달래를 발견했다는 사실 하나로도 충분한 마음의 부자가 되어 깊이 살폈다. 암·수 수술 모두 똑같은 흰색이었고, 씨방에 연결된 암 수술은 하나이며, 수 수술은 일곱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머리에 새겼다. 내년에 때맞춰 다시 오리라. 흰진달래의 증식, 그 생각에 하산 길은 허공을 밟은 듯 들떴고, 다시 모 사찰을 찾아가 분양받은 한 그루를 분재원에 식재했는데, 몇 년 뒤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듬해 비슬산에 다시 올랐는데 보이지 않아 무척 안타깝다.
진달래는 꼬리진달래, 털진달래, 왕진달래, 반들진달래, 한라산진달래가 있다. 흰진달래에 이어 본리공원에서 중국단풍나무연리지를, 대곡동에서 처진소나무를, 경주 형산강변에서 붉은 꽃 피는 인동을, 와룡산에서 꾸지뽕나무 군락지를, 청룡산에서 비술나무 군락지를, 화원에서 깽깽이풀 자생지를, 안동에서 가침박달나무 최대군락지를, 멀리 용문산 가섭봉에서 산앵도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리라.
<시인·전 대구시 앞산공원관리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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