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오신 손님들은 영국과 한국을 비교해서 설명하면 이해를 빨리한다. 우선 나라의 크기나 모습이 비슷하다. 한국이 22만㎢, 영국이 24만㎢로 영국이 한반도보다 겨우 10% 정도 더 크다. 두 나라 땅이 모두 왼쪽으로 보고 서 있는 점도 흡사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 신라 백제 고구려 3국에서 통일되었고, 영국이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3국에서 통일된 점도 같다. 통일을 한 나라인 신라와 잉글랜드의 위치, 경주와 런던의 위치가 나라 전체로 볼 때 동남부에 있는 것도 같다. 세 지방으로 나누어 두 나라 사람들의 성격을 비교하면 더 재미있다. 우리나라의 고구려처럼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인은 성격이 급하며 도전적이고 장사를 잘하고 근검절약형이다. 서쪽의 백제인들처럼 웨일즈인들은 다른 곳에 비해 부드럽고 문화적이고 감성적이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상도 격인 잉글랜드인은 외유내강형이고 전통적이고 체면을 중요시하고 권력지향적이며 리더십이 있고 동시에 좀처럼 마음속의 말이나 감정을 밖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
서론이 좀 길었다. 지금부터 가는 콘월(Cornwall) 지방을 설명하기 위한 우스갯소리였다.
콘월 지방은 영국섬 서쪽 남단에 있다. 한반도로 치면 전라남도에 해당한다. 콘월 지방 하면 영국사람들은 우선 휴가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이국적인 정서를 많이 느낀다. 영국이 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실제 쓰는 말이 세 개(잉글리쉬, 웰시, 코니쉬), 화폐를 발행하는 은행이 8개(잉글랜드 1, 스코틀랜드 3, 북아일랜드 4), 법이나 공휴일도 세 나라가 다르다면 상당히 놀란다. 영국을 연합왕국(United Kingdom'U.K) 이라고 하는 것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콘월 왕국은 아주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코니쉬(Cornish) 언어는 존재한다. 영어에 밀려서 거의 사라져 가다가 지방정부의 노력과 영국 그리고 유럽연합(EU)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방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코니쉬를 가르치고 있다. 도로표지판에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거의 무슨 말인지 발음도 하기 힘든다. 다른 지방(웨일즈, 스코틀랜드)에서도 영어가 아닌 자기네 표기를 하기 시작하고 있다.
보통 잉글랜드 지방 중에서 런던 남부 지방 특히 서리와 켄트 지방을 다니다 보면 항상 정원 같다는 느낌이 오는데, 콘월 지방은 정원 중에서도 '아주 잘 가꾸어진 정원'이다. 영국 어느 지방보다 잘 정돈되어 있고 아름답다. 콘월에는 다른 지방 해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길고 넓은 모래사장이 유난히 많다. 모래도 부드럽고 바닷물도 맑다. 바다도 완만하게 깊어져서 상당한 거리를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해변휴양지로서는 영국 내에서 콘월 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던 빅토리아 시대에 콘월 지방은 부자들의 여름 휴양지나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있었다.
지난회의 호수 지방처럼 콘월에서도 굳이 관광지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냥 해변 길로만 차를 몰면 모든 곳이 절경이다. 해변이 만들어 내는 경치는 변화무쌍하다. 바다로 면한 방향으로만 길을 찾아들어 가면 굽이굽이 바다 경치가 펼쳐지고 그 사이 사이에 해변 마을들이 숨어 있다. 멀리서 보면 정말 동화책에 나오는 난쟁이 집들 같은 모습이다. 하얀 벽의 돌집들이 정말 표현 그대로 '옹기종기 다닥다닥 딱기딱기' 정답게도 붙어 있다. 지은 지 300~400년은 충분히 된 집들이다. 그 집들은 대개가 민박(B&B: bed and breakfast) 집이다. 들어가 보면 정말 머리가 금방 부딪힐 것처럼 낮지만 시설은 전부 현대식이라 분위기가 만점이다. 굳이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해변을 돌다가 B&B 표지가 붙은 집 문을 두드리면 된다. 그러고는 유명한 '콘월의 친절'에 몸을 맡기면 된다.
콘월에도 한국의 해남의 땅끝마을 같은 '랜즈 엔드'(Land's End)가 있다. 그곳에 서면 정말 여기가 땅끝이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웬걸 언덕 위에 조그만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거창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카페'(First and Last Cafe)란다. 바다에서 들어오면서는 첫 카페이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완전한 발상의 전환이다. 해양민족다운 주장이다. 랜즈 엔드 마을에 가면 이런 이름이 붙은 모든 상점이 다 있다. 펍, 호텔, 인(Inn), 슈퍼, 주유소 등등.
콘월에는 들판의 밭과 밭을 나무담장이 가른다.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그런데 너무 좁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당연히 천천히 지나가야 하는데 양쪽 사이드미러는 물론 차체에까지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가 나서 몸을 움찔움찔하게 만든다. 만일 맞은편에 차가 오면 오도 가도 못하는 곤혹스런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모두 인심이 좋아 서로 협조해서 뒤로 빼면서 잘도 피해서 다닌다. 말하자면 '궁즉통'이다.
만일 콘월에서 자연 말고 굳이 가볼 곳을 찾는다면 두 곳이 있다. 센트 아이브에 있는 테이트 갤러리와 포트쿠르노 마을의 미낙 극장(Minack Theatre)을 찾아 보라. 테이트 센트 아이브는 런던의 유명한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분점이다. 콘월지방에서 활약하던 영국 미술가들의 작품이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미낙 극장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해변 절벽 중간에 지어진 야외극장이다. 좌석을 돌로 쌓아 올렸고 물론 무대도 돌무대이다. 바로 앞으로 길게 바다로 뻗은 절벽이 보이고, 파도 바람 그리고 갈매기 소리가 들리며,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는 여름 밤하늘 밑 절벽 중간 노천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는 낭만은 정말 말로 묘사할 수가 없다. 이 극장은 로웨나 카데(1893~1993)라는 여인이 정원사와 같이 함께 손으로 돌을 나르고 바위를 걷어 내면서 거의 40년간을 지은 극장이다. 첫 공연으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무대에 올려졌다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가? 한 여인의 생을 건 꿈과 혼이 온통 다 들어 있는 여기서 우리 '살풀이춤' 공연이나 '하회탈' 공연을 한 번 하면 기가 막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이제 다음에는 영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고 평화롭게 느낀다는 '코츠월드' 마을들을 한 번 가보자.
재영 칼럼니스트'여행작가 johank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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