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통 브루나이 왕가 외교 노하우
발빠른 외교 행보로 안보·시장 동시 확보
격에 맞는 형식'국가 이익 부합 외교 중시
중·일·러 사이 갈등하는 우리가 본받아야
악착같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을거리가 있고 잘 곳이 보장되는 사회는 천국이다. 브루나이가 바로 그런 국가이다. 브루나이의 품에 안겨 있으면 모든 것이 보장된다. 세금이 거의 없고, 교육부터 연금까지 완벽할 정도로 복지가 갖춰졌다. 병원을 가도 1천원이면 된다. 언제 어떤 사정으로 병원에 가더라도 진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살 집을 가지고 있다. 재산이 일정 수준 이하인 무주택자에게는 거의 무상으로 거주지가 안배된다.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수상가옥 마을에도 상수도와 전기가 가설되었고, 학교와 소방기관까지 설치되었다. 일상생활에서의 편의도 보장된다. 브루나이의 길거리에서 공용버스나 택시를 보기가 힘 드는데 그 이유가 있다. 집집마다 식구 수대로 승용차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동차 구입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값비싼 외제 승용차를 자전거처럼 타고 다닌다. 국경일이나 기념일에는 국민들에게 현금도 하사하고 부채도 탕감해준다.
브루나이는 참으로 신기한 이슬람 국가이다. 우리와 비교하면 특이한 것도 많이 있지만 없는 것도 많다. 우선 술이 없다. 대형쇼핑센터는 물론이고 작은 식품가게에도 주류코너가 없다. 노래방도 없다. 음주가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노래방 정도는 있을 법한데도 없다. 흡연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2005년부터 시행한 연초법(Tobacco Order)에 따르면 연초의 판매나 유통은 물론이고 공공장소, 자동차나 계단, 건물 옆 6m 이내에서의 흡연도 금하고 있다.
브루나이는 거대한 모스크이다. 법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가장 독실한 이슬람 국가 중의 하나이다. 매일 새벽 4시 40분 무렵이면 곳곳에 위치한 모스크의 확성기에서 기도문이 울린다. 도시 가득 울리는 기도문의 운율에 맞춰 아침이 시작되는데 무슬림들은 통상 하루 5번 기도를 한다. 브루나이에서는 2014년부터 금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를 법적 기도 시간으로 지정하여 전 국민이 참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기도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형에 처해진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매주 모스크에 가야 하는 귀찮음은 둘째 치고 개인적 권리의 성역에 속하는 신앙의 자유까지 강제한다는 것은 억지가 분명하다.
이런 브루나이 왕국의 생존비법은 국민적 믿음에 기초한 백조외교이다. 40만 국민들을 한 가족처럼 평온하게 부양하려면 땅에서 솟아나는 석유자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발 빠른 외교적 행보와 대처능력이 필수적이다. 영연방에 속한 브루나이가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제정일치국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안보와 시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분점하고 있는 보르네오섬의 노른자위를 브루나이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모두가 600년 전통의 브루나이 왕가가 가진 외교적 노하우이고 노력의 산물이다. 브루나이의 외교적 노력은 일간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국왕과 정부의 외교행위는 차치하고, 지구촌의 정세를 놀라울 정도로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언론의 관심은 곧 국민의 관심이고 위정자들의 관심임을 고려하면 브루나이의 외교는 백조처럼 아주 우아한 것 같으면서도 치열하고 치밀하다. 이런 브루나이의 외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권유하는 중국, 사드(THAAD) 배치를 압박하는 미국, 제3의 길로 유혹하는 러시아, 그리고 소리 없이 곳간을 침범해서 알곡을 먹어치우는 일본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모델이다. 브루나이는 지금 강대국들과 다자적 균형관계를 그물망처럼 얽으면서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아 아세안(ASEAN)의 배에 승선하려는 전략을 구사한다. 여기에는 냉전적 사고와 체면, 의리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격에 맞는 형식과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의 외교만이 있다.
이정태/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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