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 '순수의 시대' 배우 강한나

"아픔'복수'사랑 팔색조 감정 연기, 그냥 즐겼죠"

주연배우로 생애 처음 경험한 무대 인사. "맨 앞자리에서 팝콘을 통째로 엎지른 여성 관객이 기억에 남는다"는 배우 강한나(26). 물론 같이 연기한 선배 배우 신하균을 보고 놀란 관객의 반응이었지만, 유쾌했던 경험이다. "유쾌한 기억을 더 만들고 싶다"는 강한나의 움푹 들어간 보조개가 눈에 띈다.

강한나는 영화 '순수의 시대'(감독 안상훈)를 통해 영화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이다. 순수함과 섹시함이 공존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강한나'라는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알렸다. 영화계에 그의 연기는 소문이 났고, 벌써 소속사에 많은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사석에서 만난 어떤 감독은 '순수의 시대'를 향해 완성도와 내용 등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강한나와 신하균의 연기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강한나는 조선 개국 7년, 서로 다른 욕망을 좇는 세 남자의 선 굵은 드라마가 담긴 '순수의 시대'에서 홍일점 가희 역을 맡아 연기했다. 러닝타임 내내 '다색다변화'라고 할 연기와 표정을 선보였다. 그 눈빛과 표정이 '한 사람이 맞나?' 하고 의심할 정도다. 신인에게는 아픔, 복수, 사랑 등의 감정을 모두 표현해야 하는 이 가희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연기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는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에 짓눌려서 연기를 못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고, 책임을 지운다는 건 나를 믿는다는 것이기도 하니 정신 차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안동 군자마을에서의 첫 촬영 날이 눈에 선해요. 만우절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진짜 첫 촬영을 하네?'라고 생각했죠. 군자마을의 꽃들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강)하늘 씨 등 다른 배우들과 둘러앉았는데 '이 시대는 정말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생각했어요. 강하늘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신이긴 했지만 겉으로는 편하게 대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죠."(웃음)

여주인공이라는 것이 좋았을 테지만, 기존 작품들에서 나왔던 팜 파탈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좋았다. 세 명의 남자를 파멸로 이끌지만 그 방법이 각기 다르다. 특히 독함이 아니라 따뜻함, 모성애를 자극해 민재가 가희에게 빠지게 했다. 이는 줄거리 전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민재를 연기한 신하균이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하는 재미도 전하는 이유다.

강한나는 솔직히 자신이 왜 여주인공으로 뽑혔는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다만 "감독님이 그렸던 가희의 모습과 내가 대본에서 느꼈던 가희 모습이 닮았던 것 같다"고 짚었다. "감독님과 제가 같은 방향을 바라봤고, 그게 맞아떨어졌던 것 아닐까요? 분명한 건 '가희가 미인이어서 민재가 반한 건 아니다'라는 거예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웃음)

강한나는 지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엉덩이골이 보이는 드레스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후 영화 '친구2'와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 나쁘지 않은 연기를 선보이며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정사신으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이번 노출을 결부시키는 일방적인 대중의 시선도 있다. 연기자가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했는데,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는 말이다. 아쉬울 법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당연히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앞으로 제가 잘 연기해 나가고, 필모그래피를 쌓으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일단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셨던 거니까 고마울 뿐이에요. 부산영화제 때 드레스는 솔직히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고요."(웃음)

강한나는 김민재, 이방원(장혁), 진(강하늘)과 각각 베드신을 찍은 것에 대해 "필요했던 신"이라고 강조한다.

딸 부잣집 막내인 그에게 보수적인, 술도 입에 대지 않는 둘째 언니도 처음에는 고깝게 봤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왜 베드신이 있어야 하는지 알겠네? 정말 중요하다"라는 말과 함께 전폭 지원했다. 가족의 든든한 응원을 받았고, 민망할 수도 있는 베드신을 수월하게 해냈다. 특히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후배 강하늘과의 베드신도 생각만큼 민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배우와 연기할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 발레를 10년 했지만 재능이 없음을 알고 포기했다"는 강한나는 현재 연기가 좋다. 재능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고나 할까. 이 상황 자체만으로 좋은 듯했다.

"고등학생 때 연기학원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10분 동안 연기할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상황에서의 빛과 공기, 전율이 아직도 생생해요. 연기하는 게 정말 좋아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연기는 삶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학교에서 연극을 할 때나, 독립영화에서나, 상업영화에서나 매번 연기할 때마다 새롭다고 느껴요.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또 오랫동안 연기를 해야겠어요."(웃음)

강한나는 대중 연기자가 될 운명이었던 듯싶다. 고등학생 때 유명한 매니지먼트사의 매니저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이름만 대면 아는 연예인들이 즐비했는데, 당돌하게 "중앙대 연극학과에 가고 싶다"며 거절했다. 좀 더 제대로 연기를 배우고 싶다는 뜻이었다. 나중에 그 매니저를 현재의 소속사인 판타지오에서 다시 만났다.

강한나를 알아본 매니지먼트사 본부장은 "옛날에 중앙대 가고 싶다고 했는데 갔어요?"라고 했고, 강한나도 "네"라며 웃었다. 인연은 그렇게 돌고 돌아 만나는가 보다. "평범한 얼굴이 경쟁력"이라고 하는 그이지만,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눈에 띄었던 얼굴이다. 판타지오에 들어오게 된 것도 소속사 관계자가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는 그를 보고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외모에 이어 연기까지 인정받기 시작한 강한나의 다음 작품은 뭘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