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청춘'과 '아프다'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붙어다니는 현실에서, 영화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욕망하니까 청춘임을 보여준다. 사회의 주도권을 빼앗겨 버려서인지, 중년을 그리는 영화에 비해 싱그러운 젊음을 그리는 영화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 스무 살 청춘을 담은 영화 '스물'에 대해 거는 기대가 있다. '맨발의 청춘'(1964), '바보들의 행진'(1975), '철수와 미미의 청춘스케치'(1987), '비트'(1997), '늑대의 유혹'(2004)처럼 시대를 풍미한 청춘영화들이 있었다. 각 세대들은 청춘영화를 통해 당대 젊음을 대표하는 스타가 된 배우들과 함께 성장하고 늙어가는 재미를 누린다. 하지만 지금은 청춘영화라는 장르가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애송이 스무 살을 그리는 용기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유머로 무장한 명랑하고 싱그러운 스무 살 아이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금 20대 청춘들에게는 현실감을, 그보다 윗세대에게는 추억을, 20대를 자녀로 둔 이들에게는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잘하면 '써니'(2011)처럼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도 있다. 판타지로 끝날지언정 아픈 현실을 극복할 희망을 주고 지친 청춘들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건만, 영화는 한없이 투명에 가깝도록 가볍다.
세 명의 잘생긴 남자배우들이 나온다. 꿈도 목표도 없이 여자만 밝히는 뻔뻔한 치호(김우빈), 가난하지만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숱한 아르바이트를 뛰는 생활력 강한 동우(이준호),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대학 생활에 충실한 모범생 경재(강하늘), 이 세 사람은 고등학생 때부터 우정을 다진 죽마고우다. 성인으로서의 첫발을 디딘 치호, 동우, 경재는 각각 이상과 현실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엇 하나 쉽지 않다.
세 사람은 현실의 청춘들을 각기 대변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 채 잉여로 살아가는 치호,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막막한 동우, 사랑의 열병을 앓는 서툰 경재는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선 우리의 스무 살들이 그렇듯이, 보편적인 인물형이다. 영화의 장점은 현실의 어려움에 화를 내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훌쩍 뛰어넘으며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넉넉함에 있다. 과연,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의 각색가로 이름을 알린 이병헌 감독은 재치 있는 대사의 맛을 살릴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의 세태를 반영하는 에피소드와 캐릭터는 자꾸 심기를 거스른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가슴을 만지는 것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치호의 습관이나, "남자 등쳐먹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라고 중얼대는 고3 소희의 대사는 세대 차로 인한 문화적 충격이라기보다는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다. 유부남 교수와 연애하는 여학생, 돈 많고 나이도 많은 스폰서를 두고서야 성공하는 여배우, 미모 하나 믿고 살다가 이제는 아들에게 기생하는 엄마 캐릭터는, 페미니즘을 여성의 허영으로 몰아세우는 기이한 일부 현상에 대한 조응으로 보인다.
알파걸, 알파우먼이 혹 여성우월주의로 나아갈까 봐 지레 걱정하는 것일까. 예쁘니까 할 일 다 한 기특한 아이가 되고, 예쁜 여자니까 변덕스럽고 음식도 못한다는, 정말로 웃기시는 대사가 펼쳐지니, 젊은 감독의 젠더 관념이 정말로 걱정스럽다. 은근한 외모차별주의와 간간이 표현되는 여성혐오는 코미디를 위한 설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못내 불편하다.
일명 '병맛' 코미디라고 하는 대사치기와 리듬감은 좋다. 세 주인공 캐릭터 또한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이상한 놈, 착한 놈, 못난 놈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활기차고 유쾌하다. 우울한 청춘의 초상으로 가득해서 지질해져 버리고 만 여타 청춘영화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빛을 발한다. 꿈과 현실이 충돌을 일으키는 세상에서 절망하지 않고 유연하게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 영화 결말부의 희망은 허망하지 않다. 김우빈을 비롯한 젊은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호연과, 올드팝을 적재적소에 살려내어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써니'와 다른 듯 비슷해서, 남성판 '써니'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그래도 이 영화의 성별 관념에는 도저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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