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래권력의 방향, 대중의 프레임 따라 바뀐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감수/ 유나영 옮김

전 세계 지식인들, 특히 좌파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프레임'이라는 용어를 한국언론의 일상적 언어로 자리 잡도록 한 화제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출판 10년 만에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언어학자로 꼽힌다. 정치 담론의 프레임 구성에 대한 전문가로서 다수의 (미국)민주당 지지 단체, 진보적 여론조사 단체, 홍보 회사를 대상으로 프레임에 대한 자문을 하고 있고, 민주당 정책연수회와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활동가 지원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금도 대중강연과 TV프로그램 출연을 이어가면서 공적 담론의 프레임 구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어떤 단어를 들으면 우리 뇌 안에서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프레임은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프레임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는 대단히 크다. 정치 담론에서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하게 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되고 강해진다. 반면에 나의 관점은 약화된다. 그래서 저자는 진보는 보수의 언어가 아닌 진보의 언어를 써서 진보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의 사례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미디언 지미 킴멜은 쇼 제작진을 시켜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오바마케어'와 '저렴한 건강보험법'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물어보았다. 압도적 다수는 오바마케어는 싫지만 저렴한 건강보험법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했다. 그런데 사실 '오바마케어'와 '저렴한 건강보험법'은 같은 법안이다. 미국 우파들이 '오바마케어'라는 새로운 이름을 건강보험법안에 붙인 뒤, 정부가 보험산업을 장악하고 노인들의 연명 치료 중단 여부를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망선고위원회를 만든다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대중들에게 주입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공적 담론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변하게 된다. 한마디로 정권이 바뀐다. 프레임의 재구성은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이들이 이미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에 접근하여 이를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이 대중의 담론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반복하는 일에 가깝다. 이것은 부단한 과정이며, 반복과 집중, 헌신이 필요하다.

결코 프레임은 대중에게 호소력 있는 슬로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먼저 구호가 의미하는 개념이 대중의 머릿속에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지구온난화, 사회 양극화 같은 복잡한 현상을 대중이 이해하려면 우선 '유기적 인과관계'라는 프레임이 필요하다.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반영하며 우리의 이해는 세계를 반영한다는 '반시성'(reflexivity) 개념이나, 감정이입과 공감을 신경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거울신경체계' 등도 프레임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중요하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에도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내년 총선이나 다가올 대선에서 중간층(=이중개념 소유자)을 얼마나 끌어당기느냐에 따라 '권력의 운명'은 결정된다. 저자는 중간층에 호소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하지 말라고 진보세력에게 경고한다. 진보 지지층을 소외시키고, 보수적 프레임과 진보적 프레임을 모두 갖고 있는 중간층에는 보수주의 프레임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 '부의 양극화에 대한 피케티의 통찰' '기업의 지배' 등 아직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은 쟁점들을 누구의 프레임으로 갖고 가느냐에 따라 미래 권력의 향방이 정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총 16장으로 구성된 개정판에서는 절반이 새로운 자료와 분석으로 업데이트됨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318쪽, 1만3천원.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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