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기자 구타사건에 관련되어 그 기사에 대한 책임으로 제5관구 경찰청에 구속되어 4월 14일 무사히 출소하였습니다. 내일부터 편집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공정한 언론인으로 온몸을 바치고자 하오니 애독을 앙망하나이다.'
1947년 4월 15일 부녀일보에 난 기사의 일부다. 최 기자는 기자 구타사건 보도와 관련돼 구속됐다 나온 후 자신이 편집국장으로 있는 신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방 기자 사건'은 경찰관 3명이 야간통행증을 제시했음에도 기자를 구타한 사건이다. 당시 신문사 등에 대한 테러사건이 잦던 시대여서 기자회는 성명을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최 기자는 왜 방 기자 사건으로 구속됐을까. 더구나 구타를 당한 방 기자는 최 기자가 다닌 부녀일보가 아닌 영남일보 기자였다. 최 기자는 기자 구타를 권력기관이 언론자유를 침해한 행위로 봤다. 자신이 몸담은 같은 신문사의 기자가 아니었지만 기사로 항변하다 구속된 까닭이다. 신문사에 대한 권력기관의 압력이 계속됐던 탓인지 최 기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사를 그만둔다.
이렇듯 최 기자의 반골기질은 일찍이 언론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살아 숨 쉰 듯하다. 그의 몸에 밴 저항정신은 잠시 떠났던 신문사로 돌아오는 순간 빛을 발한다. 1955년 9월 13일 자에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기관의 횡포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지금의 매일신문 주필로 있을 때다. 당시 대구에 오는 주미 대사를 맞이하기 위해 학생들을 아침부터 4시간이나 길거리에 서 있도록 하자 최 기자가 정론직필의 붓을 휘두른 것이다.
다음 날 자유당 경북도당 감찰부장 등이 괴청년 수십 명을 이끌고 신문사를 습격해 인쇄시설을 부수는 등 난장판을 만들었다. 경찰 당국은 '대낮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는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는 최 기자가 신문사에 발을 디딘 해방공간의 권력기관 변명과 판박이다. 1947년 6월 대구에서 나오던 민성일보에서도 테러 사건이 발생해 신문사가 쑥대밭이 됐다. 그러자 검찰 관계자는 "물건을 파괴하는 정도라면 '테러'가 아니고 '데러'다"고 말 같지 않은 말로 둘러댔다. 매일신문 테러는 이런 궤변의 '데자뷰'인 셈이다.
최 기자는 며칠 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30일간의 옥고를 치른다. 나중에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내려진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 기자는 서울의 신문사로 자리를 옮겨서도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무능을 질타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또 언론윤리법 철폐운동에서 보듯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첫 줄에 줄곧 섰다.
열흘 남짓 뒤면 59번째 맞는 신문의 날이다. 올해 신문의 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최 기자의 반골이 진하게 다가온다. 언론인 포함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과잉입법 등의 논란은 별개로 하더라도 애초 없던 언론인이 그 법에 포함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평등권을 침해하고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곱씹어 봐야 할 것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언론인을 포함해야 한다는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이다. 촌지나 향응 등에 있어 언론 스스로 규제나 자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언론의 '갑질'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언론이 그만큼 신뢰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인이 가져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인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사회적'도덕적 책임성과 함께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함을 일컫는다. 이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권력과 자본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믿음을 주는 당당하고 반듯한 기자의 노력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날 기자 '최 기자'와 다르면서 같은 요새 '최 기자'를 보고 싶은 이유다.
덧붙이면 옛날 기자 '최 기자'는 국제언론인협회(IPI)가 20세기 언론자유영웅 중의 한 명으로 뽑은 최석채 선생이다.
박창원(톡톡지역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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