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남녀노소 불문 호감형 배우 유준상

대한민국 상류층의 민낯…속물근성 캐릭터 맛깔나게 표현 코믹 연기 '갑'이라 들었소~

연기자가 성별을 불문하고 폭넓은 연령대에 호감도를 두루 어필하며 연기력까지 인정받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특정 캐릭터를 연기한 뒤 이미지 고착화 현상을 겪을 수도 있고, 사생활이 노출돼 새로운 역할을 찾는 과정에서 괜한 장애물과 마주치기도 한다. 때론 연기력의 한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도 드물게 여러 핸디캡을 극복하며 승승장구하는 이가 있다. 유준상이 그렇다.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것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 없는' 배우로 대중의 사랑을 얻고 있다. 무대와 안방극장, 스크린을 오가며 폭넓게 활동하고 광고시장까지 장악한다. 적역을 맡기라도 하면 '베스트 액터'로 불리며 화제 몰이를 한다. '호감형'에 '연기파'라는 두 개의 수식어를 동시에 달고 산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배우가 이렇게 산다는 것, 쉽지 않다.

◆'풍문으로 들었소' 유준상 매력에 재미 극대화

최근 유준상의 존재감을 일깨워주고 있는 작품은 SBS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갑을관계를 재치있게 풍자한 블랙코미디.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상류층 집안에 서민가정에서 자란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유준상은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대형 법무법인 대표 한정호를 연기하고 있다. 대대손손 오직 '최고'만 추구하며 살았던 '엘리트 재벌 혈통'으로, 주로 대한민국 요직에 앉아있는 인물들의 어두운 면을 가려주는 일을 한다. 동시에 그 스스로도 '없는 자'들에게 서슴없이 '갑질'을 한다. 체면과 겉모습을 중요시하며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면 완벽하지 않다. 그 역시 탈모 때문에 고민하고, 아내와 사사로운 말싸움을 한다. 체통 때문에 웃지만 속으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화내고 또 소리 지르고 싶어한다.

유준상은 냉철한 이미지로 속물근성을 가린 채 살아가는 한정호 캐릭터를 맛깔나게 표현해 호평받고 있다. 사실상 이 드라마의 인기 견인차 역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품위 운운하면서도 결국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정호 캐릭터의 매력을 유준상이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친근하고 호감도 높은 유준상이란 배우가 그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캐릭터와 손을 잡고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자칫 연기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보는 이들을 피로하게 만들 수 있는 코믹하고 해학적인 설정까지 효과적으로 살려내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다.

최근 유준상은 '풍문으로 들었소'의 인기와 함께 광고 시장에서도 주가를 올리고 있다. 드라마가 끝날 즈음에 맞춰 촬영을 타진 중인 광고 건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게 유준상 소속사 관계자들의 말. 사실 유준상은 2012년에도 KBS2 TV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히트와 함께 쟁쟁한 꽃미남 후배들을 따돌리고 그해 상당수의 CF를 따냈던 화려한 전적의 소유자다. 유준상이 모델로 나선 광고의 반응 역시 좋았으며 실제로 기업 차원에서 광고의 이미지로 수익증대 효과를 얻기도 했다. 신뢰도와 호감도를 갖춘 배우라 이후에도 꾸준히 광고 출연 제의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인 홍은희와 함께 NS홈쇼핑 전속모델로 발탁됐으며, 올해 1월에도 대웅제약 우루사 광고모델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종영 시기가 되면 유준상이 출연하는 새로운 광고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극'뮤지컬'드라마'영화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유준상은 무대와 카메라 앞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형 배우'다. 일찌감치 시작한 뮤지컬 무대에 지금도 오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을 오간다. 지극히 대중적인 드라마나 영화에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실험성이 가미된 예술영화에도 출연한다. 최근에도 '풍문으로 들었소'의 바쁜 촬영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뮤지컬 '로빈 훗'의 무대에 올라 에너지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단순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배우'라는 칭찬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각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해 어울리는 톤의 연기를 끌어내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 또 자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캐릭터에 투영해 최상의 표현력으로 공감할 만한 연기를 보여주는 프로페셔널이 바로 유준상이란 말을 하고 싶어 꺼낸 이야기다.

지난 2월에는 유준상이 출연한 영화 '성난 화가'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한상영가'는 국내에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사실상 국내 상영금지 조치에 해당하는 등급 판정이다. 선정성 표현의 정도가 문제가 됐는데,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아쉬울 것 없는 배우 유준상이 왜 이런 문제작에 선뜻 출연했냐'는 것이다. 대개 저예산 영화의 경우 배우들에게 충분한 금전적 대가를 주지 못한다. 게다가 출연한 배우에게 '흥행실패의 오점'을 남겨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국 유준상이 이 영화를 택한 배경에 '연기 욕심' 외엔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홍상수 감독의 예술영화에 연이어 출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드라마에 출연해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매혹시키고 '표적'과 같은 장르영화에서까지 두각을 보인다. 이미지 관리에 공을 기울이는 '연예인'이 아니라 연기가 좋아 살아가는 '배우'라 가능한 일이다.

사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나오기 전, 한동안 유준상은 '적당한 인지도를 가진 연기 잘하는 배우' 정도로만 인식됐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주연급으로 떠올라 인기를 누렸지만 이후로 줄곧 '돈 안 되는 작품'에 모습을 보였다. 연기파로 분류됐지만 흥행성이 떨어져 소위 '메이저'급 작품엔 캐스팅되지 못했다. 다행히 먼저 캐스팅이 확정된 김남주와 윤여정의 적극 추천에 힘입어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합류했고, 이 기회를 적극 살려 다시 한 번 대중성까지 갖춘 배우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동료들이 스스럼없이 추천할 수 있었다는 점을 살펴보면 유준상의 인간성을 짐작게 한다.

실제로 유준상은 항상 마주 앉아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태도를 보이는 배우들이 많은 반면에 유준상은 마치 털털한 영업사원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대한다.

언제나 유준상과 마주칠 때면 기분이 좋았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의 언론시사회 현장이었다. 당시 영화는 처참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 참석한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시사회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가수 비와 신세경 등 주연배우들이 대부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일관했다. 이날 어떻게든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크게 웃고 너스레를 떨며 목소리 톤을 높였던 건 그들의 선배 유준상이었다. 자신의 출연작이 누가 봐도 칭찬하기 힘든 수준이란 걸 베테랑 연기자가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유준상은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취재진 앞에서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형편없는 결과물에 삭막해진 극장 내 공기를 어떻게든 환기시켜보려 고군분투했다. 이 중년 배우의 노련함과 여유로운 표정이 그나마 찌푸리고 있던 미간의 힘을 빼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인상을 풀고 웃음 짓게 만드는 힘, 그게 바로 배우 유준상의 매력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연기를 맘껏 하면서도 '호감형 배우'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이유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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