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영어화(英語化)와 세계화?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고급호텔 결혼식 축가 모두가 영어노래

음식도 양식코스, 메뉴판도 영어로 떡칠

세계화라면 꼭 영어화만 떠올려서야…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식이 곧 세계화

어저께 최일류 호텔에서 거행되는 결혼식에 갔었다. 자식 가진 부모로서 조금은 부럽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 정도로 혼례를 만방에 고하며 치르려면, 혼주(婚主)의 재력은 기본이겠고 혼례의 주인공인 신랑신부의 사회적 됨됨이도 어디 내놓아 꿀리지 않을 정도리라 충분히 예상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랑도 신부도 너무나 반듯하게 잘 성장한 재원이라 남의 부러움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는 보기 좋은 한 쌍이었다. 모두들 너무나 아름다운 결혼식이라 탄성이 잦았고 "우리 애도 이렇게 결혼해야 할 텐데…"라며 입을 다셨다.

필자는 평생 해외를 다니며 살았던 데 대한 상실감의 보상 심리인지 뭔지, 고집스레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면이 없지 않다. 이것저것이 이래저래 됐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는 그 나름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들이 있을 것이다 싶어도, 하릴없는 오지랖인가, 노파심인가가 종종 발동하게 된다. 앞서 얘기한 고급 호텔에서의 결혼식 자체는 결코 잘못된 게 아닐 것이다. 단지 결혼식의 진행이나 서비스에 있어서 뭔가가 방향 설정이, 우리 마음가짐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여 곱씹어 보는 게다.

축가부터 트집을 잡아보자. 1부에서 두 번의 축가가, 2부에서도 두 번의 축가가 있었는데, 네 번 모두가 영어 노래다. 프로 가수가 나와서 한두 영어 노래라면 하객들도 좀 못마땅하겠지만 들을 만하다며 넘길 것이다. 그런데 친구나 동료들의 노래였으니 썩 아름답게 들리지는 않는다. 젊은 하객들에게는 평소부터 많이 듣고 부르는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객들이란 태반이 주위 친지, 일가, 지인들 하여 어른들이 아닌가! 또 대한민국은 아직도 태반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지방에서 상경하여 도회지에 사는 산업시대의 주인공이다 보니, 결혼식에는 고향에서 모처럼 서울 나들이하신 분들도 여전히 많다. 그런 만큼이나 결혼식이 의기양양한 젊은이들만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에는 음식을 트집 잡아 보자. 왜 호텔 결혼식은 꼭 양식(洋食) 코스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샐러드, 수프, 스테이크, 디저트까지 일일이 왔다 갔다 날라야 하는데 말이다. 하객끼리 이야기 나누기도 분잡할 정도로 이것저것 갖다 대니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언제부터 느긋하게 앉아서 음미하며 먹어야 하는 양식을 불난 집 호떡같이 먹어치우게 되었는지. 하객 중에는 외국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차라리 한식(韓食)으로 비빔밥이나 간단한 정식으로 대접하면 그 얼마나 좋아들 할까!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음식 코스를 알리는 메뉴표란 것이다. 금테 둘러서 멋지게 인쇄를 했는데, 영어로 떡칠을 했다. 음식 코스의 순서는 큰 활자로 영어로 적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활자로 한글로 인쇄해 놓은 게다. 누가 이런 메뉴표를 보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영어로 만들어 놓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신랑신부가 외국인인가, 하객들이 외국인인가, 예식장이 어디 하와이 한복판인가, 왜 이러는지 정말, 호텔을 경영하자니 외국인들이 많이 들랑날랑하는 만큼 아예 영어로 준비해 놓은 것을 편이하게 쓰는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서비스의 대상 정도는 가려야 생각 있는 명문 호텔이 아니겠는가?

요즘은 모두들 세계화, 세계화를 입에 단다. 시대가 그런 시절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우리 집안보다도 이웃과 세상의 집안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살펴야 할 때가 아니던가. 세계화라면 조금은 외국어로 소통할 만해야 할 것이고, 그중에서도 영어가 으뜸이리라. 하지만 말이다. 세계화란 곧 영어화만은 아닐 것이고, 또 영어화만이 또 세계화를 더 돈독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어 통계를 하나 들겠다. 얼마 전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바,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 세계 19위가 대한민국이었다. 남들이 한국도 아주 살 만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만하면 좀 더 우리 방식을 주장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전대완/계명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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